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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임 Jan 18. 2023

엄마랑 공부하는 게 가장 재밌어요.

학원이나 일타강사보다, 그저 엄마.

엄마랑 공부하는 게 가장 재밌어요.





“사회나 역사는 외울 거 있으면 전에 보셨던 그 A4용지들 들고 가서, '어머니. 저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궁금하지 않으신지요? 새 세상이 도래할 겁니다.’ 


하고 반강제로 들려드리고는 인강 강사 빙의해서 강의하기 시작합니다. 


아가들 가르치듯이 말하기도 하고 어머니께서 흥미가 떨어지실까 봐 시험범위가 아니더라도 관련해서 아는 내용이 있으면 슬쩍슬쩍 끼워 넣어서 최대한 재미있게 설명해야 한다는 일념 아래 말합니다.”



.




고1 아이들이 입학하고 담임을 맡았습니다. 신학기를 맞아 아이들의 명단을 확인하고 앞으로의 학급운영과 우리 반만의 행사들을 기획해보기도 하는 3월을 맞이합니다. 



책상 위로 항상 한 장의 종이가 놓입니다. 바로 우리 반 아이들의 중학교 성적입니다. 

성적을 고려해서 반이 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등수별로 차례대로 아이들의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00중학교에서 3년 동안 한 번도 놓치지 않고, 1등을 했던 학생이 있네요. 전교에서 꼴등을 했던 학생도 있고요. 골고루 잘 왔구나 하면서 호기심이 듭니다. 여기 적혀있는 이름들을 가진 아이들. 우리 반이라고 내일 등교하게 될 아이들은 어떤 성격, 어떤 스토리를 가진 아이들 일지 설레고 기대됩니다. 숫자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저도 지금까지의 데이터를 통한 선입견이 생기는 ‘사람’인지라, 숫자를 통해서 대충 이럴 것이다 하는 이미지는 그려집니다. 



그 이미지, 또는 미리 만들어놓은 선입견과 현실을 비교해보기도 합니다. 



성적으로 치면 중위권.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는.




우리 반에 그런 아이가 있었습니다. 짧은 숏컷에 뭐하는지 다가가보면 그림을 그리거나 새롭고 재밌는 만화나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조금 눈에 튀는 아이였습니다. 


활발하고 대화도 잘 나누고, 반장 선거에도 도전해 보는. 

무언가 긍정적인 도전심이라고 느껴지는 것이 있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그 아이를 다시 보니, 3월에 처음 맞이했던 ‘그 분위기’가 아니라, 공부에 꽤 많은 열정을 쏟는 그런 이미지로 변화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여러 에너지의 조각을 모아서 공부라는 것에 쏟고 있어 보였습니다. 



첫 시험과는 다르게 눈에 띄게 성적을 올리고, 자신의 진로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풀어놓는 아이였죠. 

상담 요청을 하거나 제가 먼저 가서 말을 건네면 참 성실하고 진지하게,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고 준비할 줄 아는 아이로 변해있었습니다. 





방과 후 우리 반





반에서, 유일하게


 

학원을 다니지 않았습니다.


참고사항이 되고자 하는 마음 반, 아이의 컨디션이 걱정되는 것 반으로 상담 시 학원이나 과외에 얼마나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는지 물어봅니다. 투자되는 시간의 양이 절대적으로 수학, 국어에 가장 많았습니다. 영어가 수능에서 절대평가로 바뀌면서 일까요. 영어보다 국어에 좀 더 아이들이 매달리는 걸 보게 됩니다. 방과 후 수업이나 방학 개설 수업을 보면 문해력 수업, 국어 방과 후 프로그램이 많은 것을 보면 증명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 반 숏컷머리 아이, 연우(가명)만, 학원이나 과외를 다니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구나 하고 넘겼는데요. 성적이 날이 갈수록 무섭게 올라오는 게 아니겠어요. 학원의 개수를 늘리는 친구들을 약 올리는 것도 아닌데, 날이 갈수록 공부에 재미를 느끼고 어떻게 시험을 준비하는지 요령을 터득한 느낌이랄까요. 



그렇게 가파른 성적 상승을 일으키고 제가 물었습니다. 



“선생님이 '00 자습 프로젝트' 해볼까 생각 중인데, 만약 한다면 연우는 방과 후에 참여할 수 있어?”


“선생님 참여하고 싶은데, 저는 엄마랑 공부하는 게 제일 재밌어서요. 그래서 소자 집에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흐흐. 방과 후 말고 다른 프로그램 있으면 참여할게요.”



말투가 항상 저랬습니다. 재밌기도 하면서 참 예의 바르게 거절하더라고요. 



엄마랑 공부하는 것이 가장 재밌다라…


많은 아이들과 이야기를 해보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신선하고 처음이라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 후 틈이 나서 공부 방식을 물어보았습니다.



엄마에게 어떤 식으로 알려드려야 재밌게 들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즉석에서 자신이 아는 내용을 스토리식으로 넣기도 하고 연기도 해보는 등… 할 수 있는 건 다 하더라고요. 엄마한테 어떻게 들려드리면 좋을까 하고 그림 자료나 새로운 이야기를 검색해 보기도 하면서요.



또 좋아하는 선생님이 있으면 공부를 하다 합당하게 질문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든다고 답해줍니다. 말을 걸 생각에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스스로 공부의 원동력, 또는 ‘명분’을 참 잘 만드는 아이였습니다.



수업 중 연우의 눈 속 알 수 없는 묘한, 진지함이 있었다고 느꼈습니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라고 자연히 감탄했습니다. 연우의 집중력의 이유를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취미나 관심사가 참 다양한 아이였습니다. 학교 홍보대사에 지원해 학교 홍보 영상에 배우로 출연하기도 하고, 중학교에 가서 학교를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중학교 때 미대 입시를 고려하고 있어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접한 그림을 전문적으로 공부해 보기도 하고 인스타그램에 주기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올리기도 하면서요. 참 바람직한 기록이라고 칭찬해 줬던 기억이 있네요.



학원이나 과외에 의지하고 있는 학생들보다 공부 시간이 많이 부족할 수도 있겠다고 느꼈습니다. 부모님이 강제로 공부만 시키거나 하는 일이 없고, 아이의 관심사도 다양하다 보니 당연할 지도요. 




양적인 시간 투자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는, 연우의 몰입 방법에는 두 가지 전제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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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에 두 가지 전제에 대해 이어서 연재하겠습니다. 만약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께서 제 글을 보셨다면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자주 가던 커피빈 말고, 스타벅스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요. 


그란데 사이즈, 아메리카노, 얼음 적게. 



다 마셨으니 집으로 돌아갑니다.





요즘 여러 일로 바빠 밤늦게 자는 것이 일상이 되었는데, 건강적으로는 참 안 좋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것을 포함한 창작이라는 것이 '영감'이라는 단어로 포장되는 여러 요소가 필요해서, 아침보다는 밤에 글이 잘 나오는 편입니다. 





그저 그렇다고 끄적이고 싶은, 아직 목도리를 두르는


1월의 어느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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