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국어 콘텐츠, 엄마
"어휴 가시나 정말~ 쌤이 지각하지 말랬잖아!"
"이 가시나!! 쌤이 이거 써오라고 했는데 안 했지? 너 생기부 어떡하려고 그래?"
문해력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가시나'가 반복되어 의문이 드셨을 것 같아요.
저랑 친한 국어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자주 사용하시는 말하기 방식인데요. 애정이 높은 제자들에게요. 밥을 함께 먹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습니다.
"쌤. '가시나'라는 말, 혹시 엄마가 쌤에게 자주 사용하셨어요?"
"어.. 어떻게 알았어요? 맞아요. 엄마가 저랑 언니한테 어릴 때 자주 가시나라고 했거든요... 그 탓에 저도 자주 사용하는 거 같아요."
-
문해력이라는 단어가 뜨겁습니다. 문해력이 낮아진 이유가 영상의 시대라는 말로, 아이들이 밈이나 짤 같은 짧은 영상으로 아이들끼리 소통하는 것도 그 이유 중에 하나고요. 긴 글이나 문장을 자주 접하지 않는 것도 그 이유일 수도 있습니다.
낮은 문해력의 이유가 글을 자주 접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면, 저는 100%는 동의하지 않아요.
문해력이란게, 논리성과 이해력이 높으면 자연히 높아지는 건데요. 글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자연히 키워진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자주 접하지 않더라도 이해력이나 논리력이 뛰어난 아이들도 있거든요. 대부분 대화하는 걸 좋아하고 다양한 것에 노출되는 아이들이었던 것 같네요.
저한테 문해력 문제집을 추천해달라거나, 국어 공부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찾아오는 아이들이 있었어요. 학교에 있었을 때, 문해력 수업도 진행한 경험이 있었는데요. 우선 아이들이 다양한 단어나 글을 접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머릿속에 무언가 있어야 사고하는 것도 풍부하게 하고요. 글을 요약해 보거나 논리적으로 읽은 경험이 있어야 연습을 할 수 있잖아요. 문해력이 낮은 아이들은 책은 물론이고, 부모님이나 친구와의 대화 빈도가 낮고 좋아하지 않더라고요.
'글과 말을 다양하게 접하는 것'
이것부터가 시작이란 생각이 듭니다.
결국 어릴 때부터 가장 많은 시간을 소요하는, 부모님의 '말과 글'이 중요하겠구나라는 생각이 자연히 들더라고요. 아이의 문해력과 표현력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은, 소극적이고 글을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글과 수준 높은 말을 노출시키는 건데요. 가장 좋은 콘텐츠가 '엄마'아닐까 합니다.
엄마의 어휘력이 곧 아이의 어휘력이 된다.
위에 말한 것처럼, '가시나'라는 단어.
엄마가 자주 사용한 단어나 말하기 방식은 아이에게 전이됩니다. 그 영향력은 어떤 강사나 문제집보다 강하고 빠릅니다. 그렇기에 엄마의 대화 수준, 어휘력, 소통 방식의 논리성을 높일 수 있다면, 아이들이 원하지 않는 순간에도 자연스레 스며들 수밖에 없겠죠. 책은 읽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엄마와의 대화는 일상에서 필수적인 순간이 많으니까요.
'애 한 명 키운다고 내가 공부까지 해야 돼?'라는 의문이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를 위한 좋은 문제집, 잘 팔린 강의나 학원 선생님을 데려오는 것보다 더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일지도요.
아이와 함께 영화관을 가서 영화를 볼 준비를 합니다. 즐겁게 영화를 보고 나옵니다.
아이가 말합니다. "엄마, 주인공이 마지막에 죽는 부분 너무 슬펐어."
엄마가 말합니다."그치. 엄마도 슬퍼서 엄청 울었어."
위의 대화 방식에서 큰 문제점을 느끼지 못할 만큼 매우 일상적이 이야기입니다. 좋게 보이기도 하네요. 엄마와 아이가 영화를 두고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 자체만으로요.
우리는 한 발짝 더 나가야 합니다.
엄마가 말합니다. "그치. 엄마도 엄청 슬펐는데 인류애적 관점으로 봤을 때는 주인공이 바람직한 선택을 했다고도 생각해. 왜냐하면 개인의 행복보다 공동의 행복을 위해 희생적인 선택을 추구한 거니깐. 슬프지만 다수를 생각한 멋진 선택 같기도 해. 나였으면 할 수 있었을까? 너가 주인공이었다면 다수를 위한 선택을 할 수 있어?"
어떤가요?
훨씬 더 풍부한 어휘와 논리가 보입니다. 아이가 생각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의 영화를 두고 '좋았다', '지루했다', '슬펐다'라는 단편적인 이야기보다 좀 더 사고를 확장하는 말하기 방식을 사용한 것 같네요. '관점', '바람직한 선택', '인류애', '개인보다 다수의 행복'.... 이런 단어를 접한 아이가 좀 더 의미를 곱씹어 볼 수 있고요. 엄마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더라도 새로운 단어에 노출이라도 될 수 있네요.
나의 의견을 말할 때 엄마가 사용한 '왜냐하면~'이라는 논리 구조에 좀 더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좀 더 나아가 중학교에 진학하고 벤담의 '최대다수 최대행복'의 개념을 배울 때 엄마의 말이 스쳐 지나갈지도요.
이렇게 아이의 일상을 다채롭게 하는 것이 엄마의 말, 또는 아빠의 말입니다.
그렇기에 부모라면 문해력을 기르는 것이, 다양한 어휘를 사용하는 것이 '스스로'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말해왔듯 최고의 콘텐츠는 '엄마' 자체일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