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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니 Jan 09. 2023

어디서나 환영받지만 어디서든 끝이 보이는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하루에 몇 번씩 특정 책이 있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문의가 들어오는 책은 항상 B급 취향에 없었고, 내가 취급하는 종류의 도서가 아니었다. 그래도 주문이 가능하다는 말로 응대하는데, 사실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상대에게서 ‘주문하겠다’라는 말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하고 하루 뒤에 받기에는 시간이 촉박한 상황이라서, 그러니까 지금 당장 필요한 책이라 오늘 내에 갈 수 있는 모든 책방에 전화를 하는 것일 테니까. 그리고 역시나 전화 너머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괜찮다”라고 답한다. 아마 그들은 나와의 통화를 끝낸 후 책을 당장 구하지 못해 심통이 난 얼굴로 다른 책방에 전화를 했거나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 접속했을 것이다. 모든 책방은 그 규모와 취급 도서가 제각각이더라도 책을 놓을 수 있는 공간은 한정되어 있기때문에, 인터넷 서점처럼 방대한 종류의 책을 구비 해 놓을 수 없다. 그래서일까, 나는 왠지 결국 그 사람들이 인터넷 서점으로 책을 구입했을것만 같다. 찾는 책이 있든 없든 그들에게 인터넷 서점은 동네 책방을 대체 할 수는 있지만. 동네 책방은 영영 인터넷 서점을 대체 할 수 없을 것 같다. 간편하고, 저렴한 인터넷 서점을 마다하기에는 누구든 어려울 테니까.


직접 와서 책을 구입하는 손님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전화로만 책을 찾는 사람이 많았다. 전화를 끊고 까끌거리는 입안에 냉수를 털어 넣는 일이 매일 반복됐다. 그와 동시에 갖은 책을 다 헤집어 놓고 나가거나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서성이는 사람들이 자꾸 찾아왔다. 혹시나 손님일까 기대하는 마음은 매번 무너졌고 혼자서 입을 삐죽거리곤 했다. 문 앞에 서서 책방 안을 오랜 시간 들여다보거나 입구를 막고 차를 세워두는 사람은 꾸준히 있었지만, 매번 참 적응이 안 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처음에는 화가 났다면 이제는 그냥 한숨을 내쉬고 만다. 사실 그보다 더한 건, 책방을 구경거리로 삼는 사람들이다. 며칠 전 내 또래로 보이는 여성이 문 앞에 한참을 서서 안을 들여다보다 들어왔다. 한 손에는 테이크아웃 커피를 손에 쥔 채로. 나는 책뿐 아니라 커피와 디저트를 팔고 있는데도 간혹 밖에서 사 온 커피나 디저트를 이곳에 가져와 먹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에는 그런 난처한 상황에 아무런 말을 못 했다. 우리는 어떤 식당에 가서 다른 식당 음식을 먹는 사람에게 매너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왜들 그렇게 외부 음식을 가져와 여기서 먹으려고 할까 의아했다. 더는 그런 상황에 불편한 마음으로 있기가 싫어서, 언젠가부터 외부 음식은 드실 수 없다는 안내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가 들고 있는 커피를 보며 외부 음식은 들고 올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냥 구경만 좀 하려고요.”라고 내게 답했다. 무척이나 해맑은 표정으로.     

그는 정말 ‘구경’을 하고 나갔다. ‘구경만 하고 가려 한다’라는 말을 들었던 순간부터 그가 ‘구경’을 하고 나가던 순간까지 나는 알 수 없는 불쾌감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읽던 책을 덮고 그 불쾌감의 이유가 무엇인지 가만히 생각했다. 국어사전에서 ‘구경’은 ‘흥미나 관심을 가지고 보다’라고 설명돼있다. 그제야 내가 불쾌했던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간 B급 취향에 왔던 손님 중 상당수는 책 자체보다 책이 있는 공간에 흥미를 느꼈다. 이런 내 생각이 편견이나 속단의 결과가 아니라는 건 동네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책이 있는 공간에 흥미를 느끼는 것, 예컨대 절대 사지는 않지만 책을 들고 사진을 찍고, 서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그렇다.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사진을 얻는 것이 관건이다.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이게끔 찍는 것, 그리고 그 사진을 SNS에 올리는 것이 중요하니까. 독서와 책을 좋아하는 걸 ‘인증’하는 것처럼 보여야 하니까. 그런 사람들이 손님으로 올 때마다 책방은 구경할 만한 장소로 탈바꿈한다. 나는 누군가의 단순한 흥미나 관심거리, 그러니까 구경거리가 되려고 책방을 연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동네 책방이 오랫동안 운영되기를 바란다면서도 동네 책방을 자주 찾지는 않는다. 그들에게 책방은 그저 한 번쯤 방문해 구경하거나 SNS 업로드용 사진을 찍는 용도로 사용될 뿐이다.

책이 있는 공간을 좋아해 찾아왔다면서 서가에 꽂힌 책을 인터넷 서점 앱에 입력하고, 책방과 책 사진만 찍고. ‘구경하러 왔다’는 사람을 볼 때마다 이곳의 존재 이유를 자꾸만 고민했다. 많은 사람이 책방을 이미지로만 소비하는 장소로 여길 때, 책방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책방지기는 책을 팔아야 먹고산다는 사실이 너무나 쉽게 잊힌다. 어디서나 환영받지만 어디서든 그 끝이 명확한 곳이 책방이라는 것이 새삼 아이러니하다.     


2022년을 마무리하던 요 며칠 동안 약속이나 한 듯 단골손님들이 왔다. 마치 우울한 내 마음을 아는 것처럼 차례대로 방문해 내게 새해 인사를 건넸다. 덕분에 내 기분은 한결 나아졌고, 그간 빈틈없던 책장에 조금씩의 공간이 생겼다.

쏟아져 나오는 신간 중에 입고할 책을 신중히 고르고, 팔린 책을 다시 들이기 위해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 책들은 조만간 B급 취향에 도착해 서가에 자리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사진 속 배경이 될 뿐이지만, 책과 책방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이야기보따리가 될 것이다. 하루가 지났는데 새해가 온 것처럼 B급 취향에 있는 책들이 한 권도 빠짐없이 새로운 주인을 만나는 마법 같은 일이 생기기를 오늘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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