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부터 고대하던 두 영화를 감상했다. <매트릭스>와 <쇼생크 탈출>. 90년대 명화의 반열에 오른 이들은 세월을 거듭해도 진가를 빛냈다. 다만 감상 후 두 영화의 인상은 한 점으로 중첩되었다. 하나는 암울이 극단에 치달은 미래를 말하고, 다른 하나는 원수(冤囚)의 기적을 말한다. 전혀 다른 이야기를 써내려 감에도 마치 하나의 영화로 느껴진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두 영화가 목청 높여 묻는 '자유에 대한 정의'에 답이 있다.
주인공 외에 두 영화서 주목해야 할 이들이 존재한다. '매트릭스'서 '사이퍼'가, '쇼생크 탈출'서 '브룩스'가 그러하다. 이들은 주인공과 정반대의 노선을 걸으며 전자에선 악역이, 후자에선 극의 분위기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들이 극에서 끼친 영향과는 별개로 그들의 심리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들의 공통점은 '친숙한 환경에 안주하는 성질'이다. 두 인물 모두 모진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허구이거나, 허구에 가까운 사회에 돌아가길 원한다. 그 사회가 설령 진정한 현실을 제공하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자유란 무엇인가.
흔한 물음이지만 대답은 명쾌하기 힘들다. 혹여나 확신을 가지더라도 두 영화를 감상하면 흔들리기 마련이다. 자유(自由), "외부적인구속이나무엇에얽매이지아니하고자기마음대로할수있는상태." 진정한 현실을 마주한다고 정말 "자유"로운 것일까. 사전에서 고리타분하게 읊는 '구속이나 무엇'이 현실의 괴로움과 압박을 가리킬 수도 있지 않을까. 세계는 수 세기에 걸쳐 자유를 외쳤다. 사연은 달랐지만, 자신의 행복에 구속이 존재하지 않길 바랐던 마음은 동일했다. 자유의 목적이 행복이라면, 허구일지라도 행복한 사회에 사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매트릭스'서 파란 약과 빨간 약을 선택하는 장면은 실로 유명하다.
전자를 선택하면 편안한 허구에 머물게 되고, 후자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 영화는 단순하고도 명확한 방식으로당신에게 자유를 묻고 있다. 자유란 여전히 진정한 현실을 마주하는 것인가, 아님 행복이 깃든 허구에 안주할 수 있는 권리인가.
두 영화는 진정한 현실을 마주하는 이들의 희극으로 막을 내린다. 그럼에도 그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선뜻 현실을 직면하기 망설여질 만큼 힘겹다. 이 영화들마저 결국은 허구이다.
그럼에도, 자유가 여전히 소중한 가치임은 틀림없단 걸 영화를 보며 느낀다. '매트릭스'서 네오가 가상을 깨닫고 힘을 발휘했던, '쇼생크 탈출'서 앤디가 탈옥 후 폭우로 휩싸인 하천에서 만세 했던 장면은 이성을 넘어 전율을 일으켰다. 해방감, 그리고 제공받는 행복이 아닌 거머쥐는 행복은 그 모든 유혹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킨다. 깊은 여운을 남기는 명작들에게 또 한 번 경의를 표한다. 장르가 달라도 두 영화는 말이 통한다. 근본에 질문을 던지기 때문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