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계절과 남은 고민들
초록이 짙어지다 못해 숨이 막힐 듯한 8월은 어느새 후반에 가까워졌다.
작월 중순에 퍼졌던 불안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이 흐릿한 기억만 남겨졌다. 제법 잘 지낸 건가. 그 질문에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못한 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요즘이다. 분명 놀기도, 운동을 하기도, 전에 못한 도전을 한 것도 맞지만 어느 하나 큰 소리로 내뱉을 만큼 보람차진 못했다. 아니, 그냥 제 성에 안 찼을지 모른다. 어느 하나만 제대로 해보라며 교수가 마지막 강의를 마쳤다. 가볍게 넘기던 그 말이 사뭇 무겁게 다가오는 걸 보니 여름이 지나가긴 하나 보다.
독서실의 시간만 연장되었던 지난 방학들과 다르게 진정 자유가 생겼다. 참으로 하고 싶은 게 가득했다. 헬스장 이용권을 다시 끊고, 도서관에서 책을 한아름 들고 나왔다. 친구들과 여행도 가야 하고, 이따금씩 답사도 다녀야 했다. 그러나 가장 갈망했던 건 글쓰기였다. 시간이 없어 생각을 짧은 시로만 남겨야 했던 날들에 한이 맺혔던 모양이다. 긴 글을 차분히 적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고, 그 욕심을 자판에 옮기기 시작했다.
브런치스토리를 도전한 것도 그때였다. 그러나 쉽사리 자기소개를 채우지 못하고 시간을 흘렸다. 하다못해 8월이 다가오고서야 손이 가는 대로 자판을 두드려 완성했다. 결과는 다행히 좋았다. 나도 방학에 무언갈 이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글을 쓰는 건 여전히 어려웠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글을 쓰는 행위에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
무의식적으로 들어가는 sns에선 지인들의 소식들이 쉴 새 없이 울려 댔다. 신경 쓰지 말자며 넘겼지만 정작 지나간 시간에 한탄을 늘어놓을 때마다 머릿속에 맴돌았다. sns의 폐해라고 말하면서도 그에 잠식됐다. 글쓰기를 자랑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뚜렷한 결과가 보이지 않는 일에 시간을 쏟는 게 때로는 아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철들지 못한 생각은 여전한가 보다.
그러나 글쓰기를 멈추지는 않았다. 글을 담는 목적은 조금씩 달라졌어도 말이다. 이력을 채우기 위해, 포트폴리오에 넣기 위해, 때로는 공허를 달래기 위해 꾸준히 자판을 두드렸다. 글쓰기의 효과를 따지기 전에 스쳐가는 생각의 흔적을 몇 글자로 옮기는 게 유익해 보였다. 마침내 오늘, 한 매거진에서 합격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누구의 등쌀에도 떠밀리지 않고 스스로 도전해 얻은 결실이다. 누군가 방학의 결실을 묻는다면 조금은 당당하게 답할 자신이 생겼다.
방학 내내 여러 잡념에 휘둘렸다. 어떤 일을 뚜렷이 해내지 못했다며 후회하고, 계속 늘어져만 있는 스스로를 보고 자책하기도 했다. 일말의 따분함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많은 추억과 무언갈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여름이라는 한 계절이 담기엔, 너무나도 많은 감정과 상념이 쏟아졌다. 그들이 모여 빽빽이 이룬 여름은 그래서인지 더욱 쨍했나 보다.
여전히 무더운 오후이지만, 조만간 떠나갈 여름을 기리며 글을 마치려 한다. 덥다고 투덜대던 이 계절이 다시금 그리워질까 두렵기도 하다. 그래도 차분히 좋은 기억과 감정만 지닌 채 붉게 물들 가을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