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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미스타 Aug 31. 2024

엄마의 인공위성

3월 3일,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챙겨온 남은 밥과 육개장으로 대충 식사를 떼웠다. 다들 입맛도 없어서 대충 먹는 시늉만 하다가 숟가락을 놓았지만 단 한 사람만은 아주 맛있게 그 밥을 먹고 있었다. 


''아빠, 그거 엄마 장례식 밥이야.. 알고 먹는거야?''

''뭐라고~?''


귀가 잘 안 들리는 아빠는 큰 소리로 잘 못 들었다며 다시 말해달라는 늬앙스로 대답했다. 


''그거 엄마 장례식 밥이라고!!''

''아니, 느그 엄마 병원에 있다고 내가 한번 가볼라고 하니까 느그가 안 가르쳐줬잖냐..''


아빠라는 사람은 엄마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궁금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듯이, 무슨 소린지 모를 말을 중얼거리다가 다시 육개장을 퍼먹었다. 가뜩이나 없던 입맛이 더 떨어진 우리는 모두 밥상에서 물러났다. 


동생들은 이것저것을 정리해 각자 할 일을 하러 움직였고, 나와 언니는 면사무소에 엄마의 사망신고를 하러 갔다. 언니는 장녀로서의 책임을 끝까지 다 하고자 했고, 나는 엄마와 가장 많이 싸우면서도 가장 깊은 사랑을 나누었던 딸로서, 그리고 이제는 돌아갈 회사가 없는 백수로서 뭐든 마지막까지 마무리하는 것이 내 임무라고 생각했다. 

언니는 아마 회사에 모친상으로 휴가를 냈던 것 같다. 나는 2월 말쯤 출근해 퇴사하겠노라 말을 꺼내야지 하고 있다가 예상치 못한 그날 새벽 엄마가 떠났고 회사에 출근할 수 없다는 연락조차 할 정신이 바로 들지는 않았다. 그나마 엄마집에 도착하자마자 정신을 챙겨 출근시간 언저리에 연락을 했고 엄마가 돌아가셔서 이제 출근 할 수 없다고 전했다. 관리자는 모친상으로 얘기해두겠다며 상을 치르고 돌아오란 말을 했지만 나는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내 세상은 이미 무너져 있었다. 


엄마의 사망신고를 접수 한 날은 엄마의 주민등록 생일인 3월 5일을 이틀 앞 둔 날이었다. 엄마는 출생 신고를 늦게 해서 원래 생일이 3월 4일이라고 했었는데 그렇게 따지면 생일을 하루 앞두고 사망신고를 한 셈이라 기분이 더 이상했다. 그렇게 면사무소에 가서 엄마의 사망신고를 하러 왔다고 말 했을 때, 어릴 때부터 많이 봐왔던 아저씨(어릴 때부터 봐오던 분이라 우리끼리는 그냥 아저씨라고 불렀다)가 나와서 우리를 안쪽에 있는 테이블로 안내했다. 그 아저씨는 병원과 장례식장 등에서 받아온 서류를 확인해가며 여러가지를 물어보았고 장례식장에서도 들었던 코로나 사망 지원금 얘기도 했던 것 같다. 코로나로 바로 화장을 했기 때문에 화장장려금도 신청하라고 했다. 혹시 우리가 모르는 엄마의 재산이 있다면 원스톱 재산조회를 통해서 알아볼 수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현금과 통장과 보험이 전부였던 사람이었고, 그나마도 엄마가 많이 아프게 되었을 때 우리 형제들을 불러 통장에 있는 잔고는 어떻게 하고 보험은 어떻게 해라, 하며 정리까지 다 해준 다음이었다. 원스톱으로 확인해도 별달리 나올 게 없었다. 그렇게 엄마의 주민등록은 말소되었고 그 이후에 뽑는 서류에는 너무나 잔인하게 사망이라는 두 글자가 찍혀 나왔다. 


면사무소에서 받은 서류를 들고 관할 군청에 코로나사망지원금 신청을 하러 갔다. 일단 장례를 치르며 큰 돈은 언니가 다 썼기 때문에 지원금은 모두 언니 계좌로 받기로 했다. 군청에서 나와 바로 엄마와 오랜 인연을 쌓은 보험설계사를 만나고자 했지만 엄마가 돌아가시기 직전 재산 정리 과정에서 보험을 몇개씩이나 해지했던 일 때문인지 그렇게 달갑게 맞이해주지 않았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와는 큰 문제없이 보험을 추가해가고 있었는데, 자식들이 자기 이름으로 된 보험을 죄다 해약하고 앉았으니, 엄마가 없는 지금은 고객으로서 가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갑자기 모른척 하기는 좀 그랬는지 쓸모없는 사은품 같은 것을 챙겨주기도 했다. 보험은 지원금 신청과 다르게 상속자 전원이 다같이 모이거나 대리인이 위임장을 받아와야 지급이 가능하다고 했다. 우리는 필요한 서류가 무엇인지 확인했고 날짜를 맞춰 다같이 한번 다시 모이기로 했다. 


엄마 앞으로 되어있는 돈이 나오면 지원금은 다 언니 계좌로 받기로 했고, 엄마의 사망보험금은 남동생에게 몰아주기로 우리끼리 얘기를 끝냈다. 사실 이런데서도 중간치기들은 너무나 당연히 빠지는 이야기가 되었다. 물론 나는 언니가 돈을 가장 많이 쓰기도 했고, 엄마가 아플 때 직장까지 그만둬가며 엄마 수발을 들었기 때문에 엄마가 물려줄 재산이 있다면 전적으로 언니에게 다 가기를 원했지만 언니는 보험금을 남동생에게 몰아주라고 했다. 어차피 누구 하나에게 몰아준다고 해서 그 돈이 그 사람 것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결정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생각했다. 예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첫째인 엄마와 둘째인 이모는 선산 판 돈을 모두 남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했는데 우리 언니도 어쩔 수 없는 경상도 장녀인가 싶었다. 나만 남동생이 아닌 언니에게 주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을까. 


사실 우리중에 누구 하나 대놓고 엉엉 울면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없었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아픈사람이라는 것이 확연할 정도로 엄마는 마르고 작아져 있었기 때문에 가깝든 멀든 우리가 엄마를 보내주어야 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엄마의 성격상 죽기 전까지 꼭 쥐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엄마의 통장과 보험을 우리에게 정리해 주었을 때 나는 이미 혼자 울만큼 울었기 때문에 막상 진짜로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에는 무덤덤했던 것 같다. 장례식을 치를 때에는 그렇게 무덤덤했는데 혼자 있을 때 엄마 생각이 나면 계속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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