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미스타 Sep 09. 2024

엄마의 인공위성

마른 잔디


이제 엄마집에서는 대충 볼 일을 다 봤으니, 언니도 나도 각자 사는 집으로 돌아가야지 싶었다. 언니는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고, 나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연료가 바닥을 보이는 내 차에 연료를 채워 대구로 돌아가기로 했다. 내가 아는 동네 중에서는 엄마집 있는 동네가 제일 저렴했다. 연료를 채우러 가는 김에 가볍게 자동세차도 했다. 엄마 장례식 때 주차장에서 돌풍이 불어 차 안으로 마른 잔디들이 잔뜩 들어왔지만 내부세차를 할 생각은 없었다. 그 말라빠진 잔디 마저도 엄마와 관련 된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차량 내부는 엉망이었지만 외부는 깔끔해진 모습으로 다시 출발했다. 


내가 사는 원룸에 도착해 가방을 풀고 가장 먼저 장례 때 입었던 정장을 꺼내 집 근처 세탁소에 갔다. 결과적으로 마음에 드는 세탁소는 아니었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퓨즈서울 흰 셔츠의 얼룩이 전혀 지워지지 않은 채 돌아왔고 정장도 세탁이 된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단 느낌이 들었다. 다시는 가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옷걸이에 정장을 걸었다. 


며칠이 지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생각하던 찰나에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언니 이제 좀 괜찮으면 얼굴이나 보지 않겠냐고 했다. 나는 괜찮았다. 아니, 괜찮지 않았다. 아니, 괜찮지 않을 건 또 뭐람. 나는 작은 것에 동요하지만 큰 일에는 의외로 덤덤한 사람이었다. 나의 첫사랑이었던 엄마를 떠나보내고 곧 죽을 듯이 간당간당 숨만 쉬고 있었지만, 친구에게 그런 모습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 크게 오버하며 웃기지도 않은 개그를 쳤다. 


"엄마가 나라꼴 보기 싫다고 하더니, 투표 하기 싫어서 먼저 갔다보다!"

"으이구.. 언니니까 할 수 있는 농담이네..."


3월 언제쯤인가, 정말 코앞에 무슨 선거가 있었는데, 엄마가 그냥 이꼴 저꼴 보기 싫어서 먼저 갔다고 우스개 소리를 했다. 그게 웃겼을 리 없지만 나는 그렇게라도 농담을 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나의 꺼져버린 감정을 들킬 것만 같았다. 


결국 친구와 만나서 하는거라고는 세상의 오만 걱정이었고 곧 의료 민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삶과 죽음에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의료 부분이 민영화 되니마니 하고 있는 상황에서 엄마가 계속 병원을 다녀야 한다면 우리집은 병원에 전재산을 다 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엄마와 함께 있을 때에도 '우리는 기차랑 병원에 돈 다 털어넣겠다'라며 웃었던 적도 있었다. 그것이 진짜 웃음은 아니었지만 웃을 일 없는 우리는 그렇게라도 웃으면 다행이었다. 지방에서 서울까지 병원에 다니는 엄마는 의료민영화와 철도민영화가 걱정이 되었던 걸까? 당신 때문에 자식들이 힘들거라 생각해서 이렇게 빨리 가버린 걸까? 나 혼자 넘겨짚은 것이라 해도 어쨌든 엄마는 끝까지 이기적이지 못했던 것 같다. 평생을 가족 때문에 고통받으면서도 평생을 가족을 위해 살았던 사람이었다. 


원룸에 돌아와 며칠을 배달음식으로 대충 배고픔만 달래고 있었던 터라 냉장고에 뭐가 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이제는 정신을 좀 차려야지 하고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는 갑자기 냉장고 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작은 원룸 냉장고지만 이것저것 많이도 넣어놨다며 다 끄집어 내다가 한참전에 사놓고 잊어버렸던 냉동 육개장을 발견했다. 엄마 장례식장에서도 육개장을 안 먹었는데 내가 내 돈을 주고 육개장을 사놨었구나. 그러고보니 동생네도 장례 치르기 직전에 사둔 밀키트가 육개장 소고기국이라고 했던 거 같다. 그 어느 누구도 이렇게 될거라는 생각은 안 했으니 평소에 간편히 먹을 수 있는 것을 사놨을 뿐이었는데 육개장을 보며 눈물을 짖게 될 거라고도 생각지 않았다. 그래도 다들 장례식장 음식이 맛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엄마가 편히 가시겠다고 했다.


냉장고에 먹다 남은 찐빵이 있었다. 그러고보니 돌아가시기 직전 설연휴때 엄마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해준 음식이 찐빵이었다. 그땐 이미 움직이는 것도 많이 불편하신 상태였는데, 자식들이 같이 먹자고 사온 찐빵을 찜기에 넣어 어디 한군데 눌러붙지 않게 정성으로 자리를 잡고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은 적당한 시간 조절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찐빵을 해주셨다. 엄마는 혼자 격리병동에 있으면서 밥도 제대로 못 잡쉈을텐데 나는 순간 엄마가 해주셨던 그 찐빵이 떠올랐다. 


보험사에서 며칠째 정보 확인과 진행 상황 보고를 위한 전화가 계속 오고 있었고, 나는 이제 엄마가 세상에 없는 걸 제일 잘 알고 있는데, 보험사 담당자를 만나러 밖에 나갔다가 시장을 지나는 길에 엄마가 좋아했던 것들을 보고 '이거 엄마 사다 줘야지'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잠깐 정신을 차리면 혼자 미쳤나봐 하고 읊조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