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불
각자의 집으로 흩어진지 약 일주일 만에 엄마집에 다시 왔다. 언니는 연차를 썼고 나는 백수라 상관없었다. 여동생은 지인 결혼식 때문에 집 근처에 올 일이 있어서 잠시 들르기로 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옆에서 자고 있던 언니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2층에 올라가니 문을 열자마자 향냄새가 진하게 났다. 엄마 사진과 함께 향이 타고 있는 향로 앞에는 비어있는 맥주캔 2개와 함께 누워있는 언니가 있었다. 나와는 다르게 감정 표현이 그다지 강하지 않은 언니였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냥 지나가겠거니 했던 나의 예상이 틀렸다. 순간, 엄마의 빈자리를 가장 크게 느끼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없으니 여기저기서 난리였다. 엄마 눈치를 보며 연락조차 못하던 삼촌도, 집에서 찍소리 못하던 아빠도 말이 많아졌다.
엄마 아플 때 물 한잔 떠다 준 적 없으면서 본인이 엄마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한 것처럼 떠들고 있는 애비라는 자를 보고 있자니 속이 뒤집어졌다. 밖에서 술을 잔뜩 처먹고 들어와서는 또 술을 찾는다. '살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에 우리는 모두 참던 화가 올라왔고 남동생은 방에서 뛰쳐나와 입 닥치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미 얼굴에 술이 가득 차있는데 동생 부부가 왔다고 밥 먹으러 나가자고 하는 말에 그냥 집에서 먹자고 하자마자 또 그길로 나가서 술을 더 마시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밥을 먹겠다며 국을 뜨다가 밥상 위로 넘어졌고 나와 여동생이 겨우 일으켜세워 국 쏟은 손을 찬물로 닦아주고 자리에 앉혔다. 손을 씻으러 갈 정신은 둘째치고 자신의 의지대로 설 수도 앉을 수도 없이 술에 쩔어있었다. 엄마 계실 때도 술 먹고 사고쳐서 일평생을 괴롭히더니 정말 끔찍했다. 엄마가 아니었다면 당신같은 자와 상대라도 했겠냐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더는 힘 빼고싶지 않았다.
억지로 한숨을 자고 아침부터 소란스러워 밖에 나와봤더니 언제 취했었냐는 듯 아빠가 멀쩡하게 마당에 있는 대파를 뽑아 다듬으며 아기를 안고 있는 동생의 배우자에게 쓸데없는 이야기를 또 주절거리고 있었다. 우리가 겪은 모든 일들이 없었던 일이 되지 않는데 혼자만 평화로왔다. 우리는 너무 피곤한데.
애비라는 자는 엄마가 없는 집에서 뒤늦게 아빠 노릇이라도 하고 싶었는지, 집에 갈 때 다듬어 놓은 파를 꼭 챙겨 가라며 하루 종일 얼굴을 볼 때마다 얘기했다. 삼십 년이 넘게 '한집에 같이 사는 사람', '언제 사고 칠지 모르는 사람' 정도로만 존재했던 주제에 갑자기 아빠 노릇을 하겠다고? 웃기지도 않았다.
저녁에는 옥상에 있는 그릴에서 고기를 굽기로 했다. 엄마가 덜 아플 때 몇 번 사용하고는 방치되어 있었던지라 평상과 그릴에 먼지가 포옥 쌓여있었다. 장례식 치르느라 같이 고생한 제부가 바비큐를 하고 싶다고 하니 없는 기운을 짜내서라도 한 번쯤은 해줄 만하다고 생각했다. 언니는 저녁을 먹고 혼자 쉬겠다며 2층 방으로 갔다. 늦은 밤, 언니와 함께 술을 한 잔 더 하고 싶다는 제부의 말에 나는 언니가 혼자 쉬고 있는 2층으로 제부와 함께 올라갔다. 가볍게 맥주와 과일주를 한 잔씩 하면서 아빠에게 향하는 우리의 싸늘한 반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부가 놀랐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냥 얘기해줄게. 우리는 어릴 때부터 아빠 때문에 엄마가 힘들어하는 거 보면서 살아왔고 우리도 너무 힘들었어. 그게 쌓이고 쌓여서 이제 더는 참아줄 수가 없는 상태가 되니까 다 터져 나오고 있는 중이고...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어떻게 아빠한테 쌍욕을 하냐고 우리한테 뭐라 하겠지만 우리는 다 이유가 있어. 앞으로 더 심한 일도 있을지 모르니까 너무 놀라지 말라고 얘기하는 거야.''
동생의 배우자는 우리의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을 하는 듯했다. 결혼이란 걸 앞두고 우리집에 처음 왔을 때 외동인 자신과 다르게 형제가 많아서 좋다고 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내가 '많으면 뭐해, 남처럼 사는데.'라고 대답했을 때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던 그날과 오늘은 조금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