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그때가 진짜 그립니다 너도 그렇지?
석원이가 전학을 가고 나서 나는 그 이후 이 친구의 소식을 어느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었다. 석원이 소식을 아는 친구들도 없었고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나는 29살에 서울에 첫 직장을 구하게 되었다. 뱅뱅사거리 근처에 있는 꽤 큰 규모의 회사였다. 나름 복지도 좋고 다른 친구들도 모두 부러워할 만한 회사였다.
그렇게 몇 개월간 겨우겨우 회사에 적응하던 어느 날이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전화기 넘어 수줍은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꽤 낯선 남자 목소리였다. 어디서 듣던 목소리 같은데 누군지 전혀 모르겠다. 나는 혹시 이상한 데서 걸어온 전화 같아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상대방은 나를 알고 있듯이 다시 말했다.
"야~ 나야 나. 친구 목소리도 까먹었냐? 나야 석원이~"
중학교 때 우두머리였던 석원이었다. 이름도, 얼굴도 잊고 있었던 석원이었다. 처음에는 석원이라는 이름이 어색했지만 내심 어릴 적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그런지 뭔가 어색했다.
"어... 그래 오랜만이네... 잘 지내지... 내가 지금 바빠서 나중에 통화하자"
나는 그렇게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고, 그날은 하루종일 뭔가 안 좋은 기억으로 찜찜하게 지냈다. 퇴근 시간이 다가왔을 때 겨우 그 찜찜한 기분을 털어낼 수 있었다. 그때 갑자기 문자가 왔다.
"야 나 석원인데 퇴근하면 전화해라~꼭 전화해라~"
또 강제다. 이 친구는 지금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 결국 난 그날 강남역에서 석원이와 다시 만났다.
이제는 어느덧 성인이 되어서 술 한잔 먹으며 아름답고, 낭만 있고, 즐거웠던 시절의 옛날이야기를 하는 석원이와 그 시절에 너의 폭력으로, 폭언으로, 네가 있는 것만으로도 떠올리기 싫은 나는 각자 서로의 술을 끊임없이 마셨다.
석원이는 서울로 이사 온 후 많이 고생했다고 했다. 지방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들한테 따돌림을 당했고 그런 일로 몇 번이나 전학을 다녔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에게 즐거웠던 시절은 중학교 1학년 전주에 있을 때였다고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석원이는 중국으로 유학을 다녀왔다고 했다. 군대도 다녀왔고 폭행으로 영창도 다녀왔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내 연락처는 서울로 취업한 다른 친구를 통해서 받았다고 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석원이한테 연락하지 않았고 연락이 와도 받지 않았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 친구는 전혀 변한 게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우두머리로 있던 과거의 영광을 다시 찾고 싶은 듯했다. 나를 이용해서 말이다.
사람은 한때 누구나 잘 나가고, 행복했던 시절이 한 번쯤은 있는 것 같다. 그게 나한테는 행복한 시간이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도 행복한 시간이라는 법은 없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거든 꼭 자신만 돌아가자. 그게 내가 추억을 아름답게 만드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