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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이아빠 Apr 29. 2024

#7. 이어폰 친구

캬~~ 노래 죽인다.

유독 감수성이 많은 남자도 있다. 누군가 아픈 걸 보면 안쓰럽고, 슬픈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나고, 친구가 조금이라도 다치면 걱정하는 그런 남자도 있다. 감수성이 많다는 것을 나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는 싫다. 이런 남자도 있고 저런 남자도 있다.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눈물을 흘린다. 그런 자연현상을 거슬러야 진정한 남자가 된다. 모든 사람에게는 눈이 있다. 나도 눈이 있다. 그것도 두 개나 있다.


자잘한 사건들이 지나가고 어느 누구보다 평범하게 중학교 시절을 보내던 나는 어느덧 2학년이 되었다. 1학년 때 겨우겨우 친했던 친구들 반절은 다른 반으로 갔고 나 역시도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다. 이미 복도를 오고 가며 얼굴을 알았지만 이름도 성격도 모르는 새로운 20명의 친구들과 같은 반이 되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우두머리가 나타났고 그 옆에 두 친구가 생겼다.


반복되고 지겨운 학교 생활에서 나에게 유일한 취미는 카세트테이프로 듣는 노래였다. 그날그날 기분과 날씨에 따라 선곡을 바꾸며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좋았다. 쉬는 시간에 두곡 정도 들을 수 있었는데 그 짧은 시간에 듣는 노래는 머릿속을 시원하게 만들어줬다. 

또, 앨범 속에서 나만의 명곡을 발견하게 되면 마치 보물을 찾아낸 것처럼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내가 찾아낸 보물을 마구 자랑하고 싶어지기도 했다.


보연이는 내가 2학년이 되고 나서도 전혀 존재를 모르고 있던 친구였다.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조용하고 말이 없던 친구. 그날도 어김없이 나는 수업이 끝나고 책상 밑에 있던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이어폰을 귀에 꽂는 순간 주변 친구들의 떠드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오직 나 혼자만 따뜻한 햇살을 온몸으로 받고 있는 듯했다. 그때 나는 보연이를 처음으로 봤다. 나랑 똑같이 창밖을 보며 노래를 듣는 보연이를 봤다.


무심코 지나가긴 했지만 보연이는 2학년 같은 반이 되었을 때부터 아무 말이 없었다. 주변에 친구들도 없는 듯했고 학교가 끝나면 혼자 집에 돌아갔다. 전혀 보이지도 않고 특이한 것도 없었다. 단지 보연이는 수업시간을 제외하고는 항상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고 있는 듯했다. 


신기한 것은 무슨 노래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나는 보연이가 지금 듣고 있는 노래를 어느 정도 맞출 수 있었다. 조용한 노래를 듣고 있을 때는 무표정이었고, 신나는 노래나 즐거운 노래를 듣고 있을 때는 미묘하게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어느 날 쉬는 시간에 우연히 보연이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보연이 옆으로 다가가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걸었다.


"야~ 너 무슨 노래 듣냐?"


나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보연이의 오른쪽 이어폰을 내 귀에 가져왔다. 영어로 부르는 것 같은데 무슨 장르인지 알 수 없는 노래. 노래라고 하기에는 너무 큰 기타와 드럼 소리. 부른다고 하기보다 외침에 가까운 소리. 당시 보연이가 듣고 있던 노래는 헤비메탈이었다. 귀가 찢어질 것 같았다.


그렇게 학교가 끝나고 집에 걸어가던 중 내 머릿속에는 계속 보연이가 들려준 노래가 생각났다.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기분이 좋아졌다. 또 듣고 싶었다. 


그날 이후로 보연이와 나는 이어폰 친구가 되었다. 서로 각자의 취향을 존중해 주면서도 상대방의 노래 선곡에 대해 느낌을 교류하는 그런 이어폰 친구가 되었다. 나는 주로 발라드나 R&B가 좋았고, 보연이는 메탈이나 락, 힙합 같은 장르를 좋아했다. 우리는 서로 내일 서로에게 들려줄 명곡을 한곡씩 골라서 다음 날 들려주곤 했다.


2학년 2학기까지 보연이와 나는 서로 멋진 명곡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그날에 우리가 찾았던 명곡들은 아직도 사람들에게 명곡으로 남아있다. 우리의 선곡은 아주 정확했다.


보연이와는 2학년 2학기가 시작되면서 멀어지게 되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보연이와 나는 공부를 해야 했다. 더 이상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지 않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서로 대화도 줄어들었다. 우리는 마치 원래 친하지 않았던 것처럼 지냈다. 그렇게 보연이는 반에서 10등 안에 들어가는 성적을 얻었고 나는 40등에서 30등까지 성적이 올랐다. 


보연이한테 얘기하지 않았지만 그 시절 나는 노래보다 더 좋아하는 것에 빠졌기 때문이다.


노래는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이자, 따뜻한 손길과도 같았다. 왼쪽 이어폰에서는 나와 함께 울어주는 친구가, 오른쪽 이어폰에서는 응원하는 친구가 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노래를 좋아했나 보다. 지금도 나는 노래를 좋아한다. 하지만 점점 더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없다. 그래서 더 힘들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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