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에 장자가 필요한 이유
21세기 우리의 삶은 빠르게 돌아가고 있고 인공지능의 발달과 양자컴퓨터의 등장으로 그 속도는 더 가속되는 추세이다. 그런데 이런 시대에 전국시대에 대표적인 도가 사상가 장자이야기가 필요한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장자는 우리에게 기술처럼 활용성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어도 범용적이고 넓고 깊게 볼 줄 아는 시선을 알려주는 눈으로 개안시켜 주기에 충분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물질만능주의는 비단 오늘날만의 일이 아니다. 춘추전국시대도 물질만능주의는 팽배해 있었다. 그런 시대에도 장자는 돈에 종속되는 것이 아닌 주체로서 살아가길 바랐고 그러기 위해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여기고 나의 자아를 죽이고 다시 깨어나는 일, 오상아(吾喪我)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소요유부터 시작하여 33편으로 이루어지는 장자는 우리에게 자유와 더 큰 시야로 사는 삶을 말해준다.
작년부터 쇼펜하우어, 니체, 부처가 주목을 받고 있는 데에는 대한민국 사회가 그만큼 인간관계를 비롯해 여러모로 힘들고 위로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큰 것으로 해석할 수가 있다. 다만 그것이 에세이나 소설이 아닌 철학인 것은 고무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기류를 고단한 삶에만 그 이유가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위버맨쉬와 같은 정신적 성장을 주문하고 있는 니체와 고독한 세상에서 홀로 살아가기를 더 독려하는 듯한 쇼펜하우어의 말은 장자와 결을 같이한다고 생각한다. 대중의 우매함 홀로 고결하고 정신적으로 더 성숙함을 주문하는 것은 동서고금의 철학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이다.
장자도 이와 같이 매미와 비둘기 같은 무리가 아닌 곤이 변한 붕이라는 9만 리를 날아가는 새가 되기를 우리에게 주문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에게 넓고 깊은 시선을 갖기를 주문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