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유럽여행에 다녀올 무렵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떠날 때에는 무엇이든 될 것 같은 희망찬 생각으로 가득 찼다.
지금 그날의 분위기를 떠올리면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다. 여행 중에 지나치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 일이 잦았던 것이다. 내가 동양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목을 끌었던 것 같진 않았다. 내가 아니어도 각지에서 여행 중인 다양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가끔은 가벼운 눈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서양사람들은 눈 마주치는 것을 어색해하지 않는 걸까? 하지만 그 눈인사는 서양사람들이라서 나눌 수 있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곳은 많은 여행객들이 모이는 여행지였다.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반가운 마음으로 나눌 수 있는 눈인사였을 것 같다. 그 순간은 평범한 일상과는 조금 다른 특별한 순간이니까.
여행을 떠나면 낯선 곳에서도 작은 동질감에 큰 친근감을 느끼고는 한다. 그때 묵었던 숙소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방을 공유하는 도미토리였다. 처음 방문을 열고 들어가 눈인사를 나눈 순간, 한국인임을 직감했다. 낯선 이국 땅에서 만난 한국인이라서일까? 왠지 모르게 더 반갑게 느껴졌다. 그 이후로도 몇몇 한국인 친구들과 같이 밥을 먹거나 여행지를 동행하기도 했다.
축구를 직관하기 위해 갔던 유럽의 한 도시에서 친구들과 샹그리아를 마실 때였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들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특별한 추억이 되는 이 순간만큼은 낯선 사람이 함께 있더라도 친근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순간을 지나가는 외국인 관광객마저 반가운 눈인사를 나눌 수 있는 이곳에서 비슷한 나이의 같은 한국인이고, 수많은 여행지 중 축구를 보기 위해 만난 이 인연이 어찌 반갑지 않을 수 있을까.
‘여행’이라는 큰 카테고리 속에서, ‘축구’라는 콘텐츠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좋은 사람이 있다면 정말 운명과 같은 기분을 느낄 것만 같았다.
가끔은 한 번쯤 여행지에서의 영화 같은 특별한 만남을 상상한 적도 있었다. 나는 운명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운명 같은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을 보면 낯선 상대지만 이야기가 술술 이어진다. 서로의 관심사와 취향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 뒤늦게 서로의 이름을 물어보며 민망해하는 그런 장면이 생각났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한다. 하지만 생각처럼 자연스러운 만남이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기에 ‘인위적인 만남도 추구‘하며 눈을 돌리기도 한다.
여행을 떠났을 때처럼 모든 게 친근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그 순간을 일상에서도 마주할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을 떠나 여행을 가는 것처럼 일상적인 루틴을 내려놓고 색다른 이벤트를 만드는 게 첫걸음인 것 같다.
꼭 멀리 여행을 떠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원래 다니는 길이 아닌 길로 돌아가보기도 하고,
원래 가보지 않던 곳에서 친구와 약속을 잡기도 하고,
색다른 취미나 운동에 도전하거나,
와인을 좋아한다면 분위기 있는 와인바에 가는 것처럼
해볼 수 있는 새로운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
영화의 주인공처럼 편안한 분위기만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여행을 떠날 때와 같은 그런 가벼운 마음을 일상 속에서도 품고 살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