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의 작은 극장을 알게 되었다. 두 개의 작은 관람실과 카페, 빵집, 서점과 작은 갤러리가 함께 있는 곳이다. 이십대 때 만났던 애인의 미래 꿈이 동네 주민들을 위한 패밀리씨어터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었다. 마치 그런 곳이겠구나 싶은 곳이다.
1월 1일에 일본영화 <러브레터>의 개봉 30주년이 되어 재개봉을 하게 되었다. 새해의 첫 날을 그 영화를 보는 것으로 보내기로 했다. 수십번 반복해서 봤던 영화이기도 하지만, 정작 극장에서는 한번도 본적이 없었기에, 그리고 지난 12월에 여주인공 미호 나카야마가 세상을 떠났기에. 나의 작은 추모의 마음을 전하기 위한 의식이기도 했다.
영화는 너무 좋았다. 50석 정도 되는 작은 극장에 모인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 <러브레터>를 처음 보는 이십대 소녀와, 삼십년 전 그런 추억을 지녔었던 오십대의 부부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숨소리와 함께 영화를 봤다. 어두운 방과 영화 속의 하얀 눈밭에 누운 주인공의 옆 얼굴. 까만 옷을 입고 누군가를 추모하는 그 장면, 가슴이 먹먹했다. 이어지는 모든 장면들, 자신의 미래를 모르는 것 같은, 아니 어쩌면 알고 있는 것 같은 주인공의 행동들. 떠나간 이를 회상하는 모든 장면들, 그리고 언제나 먹먹한 마지막 씬의 책을 품에 끓어 앉고 말을 잇지 못하는 여자 '후지이 이츠키'의 모습. 그리고 검은 화면에 하얗게 올라가는 나카야마의 이름.
Miho Nakayama
그녀를 만난 적 없지만, 만날 가능성은 원래 거의 없었지만, 이제는 절대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더 먹먹했다. 동그랗지만 날카로운 그녀의 눈매가 더 슬프게 보였다. 그것은 영화 속 주인공이 아닌 미호 나카야마 그 자신 같았다. 너무나 작은 체구의 그녀. 죽음 이후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죽음 이후 그녀는 그녀일까. 그녀는 지금은 어떤 존재일까. 나는 언제쯤 죽음 이후를 알게 될까. 그때 나는 그것을 인지할 수 있을까? 그때 나는 존재할까? 그때 나는 나의 죽음을 슬퍼할 수 있을까?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라면, 우리는 왜 살아가고 있나. 죽은 자를 그리워하는 것은, 다시 만나리라고 생각하기도 하는 것은 산 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살아있다는 이 사실은 어떤 의미가 있나. 그토록 의미있는 것이라면 왜 시간은 이렇게 쉬지 않고 흘러가나. 그리고 왜 우리는 서로의 떠나는 날을 갑자기 맞이할 수 밖에 없나. 왜 우리는 그것을 준비할 수 없나. 나는 왜 죽음에 대해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