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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람 Nov 21. 2022

그렇다고 곧장 바뀌는 것은 아니고

남자 친구에게도 해주지 않았던 일

자신감이 생겼다. 가방에는 언제든 먹을 수 있는 약이 있었다. 머리가 너무 아픈데 약을 사러 갈 정도의 의욕도 없어 참고 참다가 더욱더 우울해져 울다시피 일그러진 얼굴로 약국에 가는 일은 이제 없다. 나는 조금 더 용기를 얻었다.


언니가 이제 슬슬 외출 장소를 바꿔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좋은 생각이었다. 나도 얼른 이전처럼 별스럽지 않게 외출하고 싶었다. 우선 언니 동네에 가보기로 했다. 우리 집에서 구로디지털단지역까지 가려면 20분쯤 걷거나 마을 버스를 5분 타고서 홍대입구역까지 나가 2호선을 타고 16분을 가면 된다. 지하철을 갈아 타지 않는 데다 타는 시간도 길지 않다. 간단하다. 그런데 막상 외출하려니 지하철을 타는 일이 걱정되었다. 타고 싶지 않았다. 이미 수십 번은 족히 가봤던 익숙한 곳인데도 집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을 간다는 사실에 마음이 불안해졌고, 이전에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숨이 막혀 뛰쳐나갔던 기억도 떠올랐다. 지하철을 타고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심장의 존재감이 두드러졌다. 쿵쿵쿵쿵. 당장 지하철을 타고 가는 건 아무래도 어려워 보였다.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택시를 타고 가더라도 일단 멀리 나가보는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남편도 그러는 게 좋겠다고 거들었다. 언니랑 노느라 밥 먹듯이 다녔던 곳에 가서 재밌게 놀다 오면 이동이 편해질 수도 있다고 했다. 나도 그러길 바랐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소아과가 없다. 나는 4년 전에 운전면허증을 갱신했지만 정말로 운전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남편은 지하철로 출퇴근했기 때문에 주차장에 차가 그대로 남아 있는데도 그랬다. 그러므로 아이가 감기에 걸리면 매번 택시를 타고서 병원에 가야 했는데 아이는 어린이집에 들어간 뒤로 일 년간을 코찔찔이로 살았기 때문에 택시를 타고 다닐 일이 정말 많았다. 그러니까 원래 같았으면 택시를 타고 다니는 일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긴장되었다. 택시를 타기 위해서 마음을 여러 번 다잡아야 했다.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내릴 수 있어, 를 주문처럼 외우며 택시를 잡아 탔다. 긴장해서 자꾸 손을 만지작거리고 창문을 내려 바깥바람을 쐬는 등 안절부절못했지만 여전히 지하철을 타는 것보다는 마음이 가벼웠다. 이런 경험이 쌓여야 후에 지하철도 탈 수 있을 것이었다. 택시비가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처음으로 언니를 만나러 갔던 날이었다. 택시를 타고 갈 때에는 조금 긴장했지만 역시나 별일 없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언니를 만나고 나서는 밥도 잘 먹고 커피도 잘 마시며 즐겁게 놀았다. 시간이 점점 흘렀고,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 가까워졌다. 적어도 세 시 반에는 택시를 타야 했는데 세 시쯤부터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자꾸만 시간을 확인하게 되었다. 시계를 보았다. 세 시 일 분이었다. 다시 시계를 보았다. 세 시 이 분이었다. 거의 일 분에 한 번씩 휴대폰 시계를 들여다보았고 그럴수록 마음이 초조해졌다. 얼마 뒤에 다시 택시를 타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더 이상 언니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제 힘을 못 이겨 제자리에서 슬금슬금 도망가는 낡은 세탁기처럼 심장이 쿵쿵거리며 목 위로 조금씩 올라오는 것 같았다.


일단 약을 먹었다. 이 상태로 택시를 탔다가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게 급선무였다. 가방에는 의사가 처방해준 약이 있었고, 언제든 약을 먹을 수 있도록 생수도 한 병 들고 다녔으므로 결심만 하면 언제든 약을 삼킬 수 있었다. 택시를 타기 전에 효과가 일기를 바랐는데 십 분, 이십 분, 삼십 분, 시간이 흘러도 이게 약 효과가 있는 건지 아닌 건지 알 수 없었다. 모호했다. 약 효과가 있길 바라는 마음이 심장을 제자리에 밀어 넣으려 애쓰는 것 같긴 했다. 어쨌든 조금 전보다는 나아지고 있다고 믿어야 했다. 택시 탈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언니가 이전처럼 택시 잡는 걸 도와주었다. 이제 정말로 택시를 타야 했다. 초조했다. 그런데 언니가 별안간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람 씨, 그냥 내가 택시 타고 같이 갈까요?


그때의 기분이 어땠냐면, 미로에서 마침내 출구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하늘이 열리더니 어느 한곳에만 따사롭게 빛이 비치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 빛을 받는 사람은 나였다. 얼른 고개를 끄덕이면서 언니가 함께 가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언니가 같이 택시를 타주었다.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택시를 타고서 얼마쯤 달렸을 때 언니가 내 얼굴을 보더니 크게 웃었다. 딱히 웃긴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었으므로 어리둥절해 언니를 쳐다보았다. 이람 씨, 아까랑 얼굴색이 완전 달라진 거 알아요? 언니의 말에 따르면 택시를 타기 전 나의 얼굴색은 하얬단다. 얼굴이 희게 질려 있었고 입도 꾹 다물고 있었다고. 말을 아예 안 한 것은 아니었으나 긴장한 얼굴로 말을 아꼈다고 했다. 그러다 언니와 택시를 타고 나서는 혈색이 돌아왔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마음이 가뿐해졌다고 생각했으나 얼굴색이나 말수까지 확연히 달라진 줄은 몰랐다. 나의 얄팍한 마음이 이렇게 또 한 번 드러나다니. 웃기는 일이었다. 집에 데려다주는 건 남자 친구한테도 해준 적 없는데, 라고 언니가 말했다. 웃겼고, 웃기는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은 이미 지나간, 별것 아닌 일로 여겨졌다.


언니는 정말로 나를 집 앞까지 데려다줬다. 건물 입구에서 내가 들어가는 모습까지 지켜보고서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참 고마운 일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믿음으로 바뀌었다. 상태가 좋지 않을 때 당장 달려올 사람이 있다, 나의 짐을 가볍게 만들어줄 사람이 있다. 그런 믿음은 약보다도 효과가 좋았고, 키만 훌쩍 자란 식물을 받쳐주는 지지대가 되어주었다. 나는 내 몸을 지지대에 바짝 붙여 자라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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