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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람 Nov 22. 2022

다시 병원에 가다

남편도 틈틈이  보살폈다. 밖으로 데리고 나가 코에 바람을 넣어주었고 마음을 평온하게 해준다는 물건들, 인센스 스틱이나 아로마 오일 등을 사다 날랐다. 언젠가는 나에게 사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서 화를 가라앉히는 , 이런 유의 책을 사주었다. 이전부터 줄곧 사주고 싶어 하더니만 기회를 놓치지 않고서 다시   들이민 것이었다. 여전히  몸에 화가 많은  같다면서. 화의 지분을 5 넘게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다니, 딱밤을 먹이고 싶었지만 참았다. 어쨌든 함께 사는 사람으로서 나의 상태에 민감하게 반응해가며 여러 가지로 노력 중이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여럿 있었는데도 상태가 빠르게 좋아지지는 않았는데 종종 마음이 불안했고, 답답했고, 호흡이 가빠왔다.  과호흡이 올까  무서웠다. 실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재빠르게 상황이 나아질  없었다. 게다가 나는 아직 약이 아닌 다른 해결법도 배우지 못했다. 다음번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일어나더라도  단단하게 버틸  있도록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병원에서 받아 온 약을 거의 다 먹었다. 이때는 코로나에 걸리면 꼬박 2주간을 집, 아니면 방에 갇혀 지내야 했고 또 주위에서 확진자가 계속해서 나왔던 즈음이라 마음이 조금씩 초조해졌다. 당장 코로나에 걸린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시기였는데 그 말은 곧 나도 집에 혹은 방에 갇힐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생각만 해도 숨이 턱 막혔다. 얼른 약을 더 채워놓아야 했다. 남은 약봉지를 헤아리던 손을 멈추고 병원에 전화를 걸어 다음 예약을 잡았다.


의사가 그간 잘 지냈는지 물었다. 비교적 잘 지냈다고, 오늘은 특별하게 일이 있어서 온 게 아니고 약이 다 떨어져서 왔다고 답했다. 의사가 이전에 먹었던 약의 효과에 대해 물었고 나는 그 약이 정말로 효과가 있었던 건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먹어도 먹은 건지 알 수 없을 정도였는데, 꼭 물이 잔뜩 담긴 대접에 붉은 물을 한 방울 떨어뜨린 것처럼, 약을 먹는다고 해서 몸 상태가 별안간 달라지지는 않지만 여기 어딘가에 붉은 색소가 들어 있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약을 믿고 있다고 답하였다. 그러자 의사가 원래 약을 먹으면 두통약을 먹은 듯이 즉각적으로 효과가 있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저번에 먹었던 약은 용량이 너무 적은 듯하니 이번에는 용량을 늘려서 조제해주겠다고, 혹 약이 너무 센 듯 느껴진다면 반을 똑 잘라 한 쪽만 먹으라고, 그 반쪽이 원래의 용량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의심했던 대로 정말로 그동안의 약은 존재로서만 의미하는 것이었다. 여기 안정제가 있다, 이 안정제를 먹으면 괜찮아질 것이다, 그 정도의 의미로. 이러한 약을 먹어본 적이 없어서 원래 이렇게 별일 없다는 듯이 몸에 잔잔히 스며드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약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도 손 안에 약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좀 진정되었으니 그런 대로 제 역할을 다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의사가 처방해준 약은 알프람 0.25mg였다. 겁이 많은 나는 이전보다 두배나 세진 약을 먹어야 한다는 게 좀 신경 쓰였다. 앞서도 말했듯이 내가 지극히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내 몸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술을 마시지 않았고, 마신다고 해도 절대 취하지 않도록 한두 잔만 마셨으며, 내가 멍하게 있단 걸 깨달으면 고개를 세차게 털고 눈을 맹렬히 깜빡거려 멍한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이 정도 용량의 약을, 그것도 하루에 세 번씩 꼬박꼬박 먹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한 알씩 먹는다고 해서 그런 일이 생기지는 않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어쩐지 긴장되어 새끼손톱의 반 만한 작은 알약 하나를 다 삼킬 수 없었다. 다행히 이 약에는 선택지가 있었다. 반으로 잘라 먹을 수 있다는 것. 처음에는 반쪽을 먹고 그 이후에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으면(당연히 나아지지 않았다) 반쪽을 더 삼켰다. 그러나 그렇게 한 알을 다 먹고 나서도 의사가 말한 즉각적인 반응은 일어나지 않았다.


의사가 약을 두고 설명할 때 두통약처럼, 이라고 말한 게 떠올랐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진통제를 달고 살았다. 정확히는 월경을 시작한 뒤부터 그랬다. 많은 여성이 그러하듯 약을 먹지 않으면 그날 하루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데 다행히 첫째 날에만 통증이 있었던 터라 피가 비치기 시작하면 당장에 진통제부터 삼켰다. 그러면 하루를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게보린이나 타이레놀 같은 고체 상태의 진통제를 한 알씩 먹었고 잘 듣지 않는 날에는 한 번에 두 알씩도 먹었다. 액체 상태의 캡슐 진통제가 나온 뒤로는 그것을 먹기 시작하였는데 하루에 세 번, 한 번에 한 알씩 딱 하루를 먹으면 무사안일하게 월경통을 넘길 수 있었다. 때로 진통이 길어진다 싶으면 이틀도 먹었다. 월경할 때의 몸 상태가 매번 똑같은 것은 아니어서, 드물지만 약이 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한 번, 이십대 중반에 한 번 그랬다. 약을 먹었는데도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극심한 통증이 닥쳤고 옆에서 건네는 진통제를 또 한 번 삼키고 나서야 통증이 가라앉았다. 이런 일이 있은 뒤부터는 더 철저하게 진통제를 챙기기 시작했다. 여러 약 중 몸에 제일 잘 맞는 약을 찾아 집과 회사에 상비해두었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잘 들었는데 이상하게 효과가 전과 같지 않아 또 다른 진통제를 찾아나선 적도 있었다. 어쨌든 대개는 약을 먹으면 삼십 분쯤 지나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통증이 싹 가라앉았다. 정신과에서 처방해준 약도 이러한 진통제랑 다를 게 없는 거라고 의사가 말했다. 약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진통제를 두 알씩도 꿀꺽꿀꺽 삼켜댔던 나인데 기껏 안정제를 받아오고선 플라시보 효과만 기대하다니. 내가 먹는 약은 고용량도 아니었고, 수시로 먹는 약도 아니었으므로 과복용을 걱정할 상황은 아니었다. 혹여 약을 먹고서 몸이 불편해졌다면 복용을 멈추고서 의사와 상담하여 최대한 몸에 맞는 약으로 바꾸면 되었다. 그 뒤로는 딱히 약 먹을 일이 생기지 않아 병원에 가지 않았지만 다시 병원에 갈 일이 생기면 이 약 또한 잘 들지 않았다고 말하고서 다른 약으로 안내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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