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이람 Dec 02. 2022

뿌듯함의 실체(1)

현주 언니가 말했다. “무력해지지 않으려면 계속해서 무언가를 하며 성취감을 느껴야 해요. 풍경을  옮긴 그림을 그리고, 옷을 만들고, 채소를 키워 김치까지 담그면 뿌듯하겠죠. 그런데 그게 성취감은 아니에요.   있는 만큼을 적당히 하는  아니라   없을  같은 일에 매달려 노력하고서 얻는  성취감이에요.” 정말로 그랬다. 그림을 그리고, 옷을 만들고, 채소를 키워 김치까지 담그고 나니 마음이 뿌듯했고 때로는 대단히 만족스러웠으나  만족감이 몸속 깊숙이 스미지는 않았다. 그런 일들을 해내서 기쁘지만, 생각해보면  대단한 일을  것도 아니었다. 맘만 먹으면 누구나   있는 일이었고, 실제로 옷을 만들거나 채소를 가꿔 김치를 담그는 일은 일상에 가까운 일들이었다. 이를테면 운동 같은 경우 건강을 위해 매일같이 적당량의 운동을 하는 , 물론 이런 일은 생각보다 지키기 어렵고 그걸 증명하듯 많은 사람이 결심만 하고서 정작 운동은 내일로 미루지만 그만큼 수많은 사람이 결심하고  정말로 해내는 사람도 많다. 이런 일들은 비교적 쉽게 만족감을 얻을  있다. 반면 운동 선수의 운동은 다르다. 하루에 십수 시간씩 몸을 움직이는데 운동하면 할수록 되레 건강을 위협받는다. 그들의 목표가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에 느끼는 것이 성취감이다.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나를 있는 힘껏 소모해야 한다.


평생에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있는가 생각해보면, 없다. 나는 무언가를 의욕적으로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반짝 흥미가 일어 얼마간 재밌게 하는 일들은 많았다. 앞서 말한 것 말고도 발레를 배워본 적이 있고, 그림으로 일기 쓰는 강좌를 들어본 적이 있고, 소설 쓰기 강좌를 들어본 적이 있고, 꽃꽂이를 두 군데에서 배워본 적이 있고, 그 밖에 손으로 만드는 몇몇 원데이 수업을 들어본 적이 있다. 빵이나 쿠키를 구워본 적이 있고, 조리법을 뒤져 그럴싸한 음식을 만들어본 적이 있고, 자전거를 사서 한강을 달렸던 적이 있다. 결국 수강하지는 않았지만 목공과 도자기, 실크스크린 수업을 알아본 적이 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의욕적이며 다양한 취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정말로 관심사가 다양하고 더 배우기 위해 수업을 듣는 걸 꺼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개 거기에서 끝난다. 신기하게도 미싱을 제외한 나머지들은 어렵지 않게 배운 데다 실력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는데 예전부터 이런 잔재주가 꽤 있는 편이었다. 그래서였는지 쉽게 만족하고 어느 정도 선에 이르면 쉽게 관둔다.


고등학교 때엔 이런 일도 있었다. 어렸을 때 미술 학원을 잠깐 다닌 것 말고는 정식으로 그림을 배워본 적이 없었지만 이후에도 그럭저럭 흥미가 있었고 재주도 나쁘지 않았던 터라 미술을 전공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재밌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에게 은근슬쩍 말을 꺼내보았다. 엄마, 나 미술 배우고 싶은데. 미대 가고 싶어. 시각디자인학과에 가면 좋을 것 같아. 엄마가 고민하다 말했다. 미술은 나중에 취미로 배우는 게 어때? 네 동생이 둘이나 있으니 지원해주기 어려울 것 같은데. 그래서 내가 어떻게 대답했느냐면, 알겠다고 했다. 엄마 말이 맞으니 그렇게 하겠다고. 서운한 마음이 아예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엄마의 말이 이해가 가는 데다 또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일도 아니었으므로 단박에 미련을 털어냈다. 두 번 말해볼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아주 깨끗하게. 후에 편집자가 되어서 디자이너와 함께 일하며 역시 디자이너란 직업은 참 매력적이고 이걸 배웠으면 즐겁게 했으리란 생각이 들었지만 그걸 못 해서 아쉽다는 회한은 들지 않았다.


대학에 입학 원서를 내야 할 때엔 국문과와 영문과를 두고 고민했다. 국어와 영어도 공부한 것에 비해 점수가 잘 나오는 편이었는데 내가 이 두 과목에 흥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흥미가 없으면 아무리 공들여 공부해도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았다. 결국 국문과에 진학했고 후에 인문학이나 문학 등을 편집하는 편집자가 되었다. 편집자가 되기로 결심한 건 아마 대학 삼 학년 때쯤 도서관에서였을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걸 무척 좋아했다. 동네에 또래 친구가 별로 없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마침 집 근처에 도서관이 있어 거길 수시로 들락거리며 책을 읽었다. 고등학교에 다니면서도 공부하는 것보다 더 집중해 책을 읽었는데, 당연한 일이었다. 공부보단 책이 훨씬 재밌으니까. 그 대신 아빠한테 들키지 않게 몰래 읽었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이제 눈치 볼 필요도 없겠다, 일 년에 백여 권씩 읽었다. 그러다 불현듯 깨달은 것이다. 와, 살면서 이렇게 오래도록 꾸준히, 집중해 해본 일이 독서밖에 없구나. 그렇다면 책과 관련한 일을 해야겠다. 그렇게 편집자가 되었다.


지금도 그렇다. 관심사가 다양하지만 아직까지 질리지 않고 꾸준히 집중하는 일은 책과 관련된 일밖에 없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 사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내가 계속해서 도전하고 부딪칠 수 있는 일은 그림이 아니고, 미싱도 아니고, 텃밭도 아니었다. 책은 이미 성심을 다해 수십 권을 만들어봤으므로 일단 통과. 글 쓰는 일은 어렸을 때부터 간헐적으로 해왔으나 짧은 글 말고는 제대로 써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가 나를 갈아 넣어 도전해야 한다면 역시 글을 쓰는 게 맞았다. 하고 싶었지만 제대로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일.


누군가는 나에게 이렇게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를 벼리며 이루는 성취감이란 게 꼭 필요한 거냐고. 그런 것 없이도 소소한 행복감을 느끼며 잘살 수 있고, 또 그렇게 자신을 몰아붙이는 일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닐 거라고. 그러면 현주 언니는 놀라며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이람 씨는 아직 이람 씨를 몰아붙인 적이 없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이번은 다르다(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