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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람 Dec 02. 2022

뿌듯함의 실체(2)

나는 나를 몰아붙인 적이   번도 없다. 몰아붙이는  무언가.  비슷하게 열심히 해본 적도 없다. 입으로만 이런저런 일을 하고 싶다고   떠들었을   내용이 머릿속에  박힐 정도로 집중하여 독서해본 적도 없고(책을 많이 읽지만  내용을 까먹고 만다) 글쓰기를 직업처럼 하루에  시간씩 꾸준히 써본 적도 없다. 그나마 현주 언니의 도움, 도움이라 말하고 압박이라 읽는  무엇을 언니가 하고 있는데, 글쓰기를 종용하는 데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매일매일 숙제를 내주므로 겨우 구색이나 맞출 정도로 글을 쓰고 있을 따름이다. 남이 시키지 않으면 곧죽어도  하여서 언니의 도움을 받으며 글을 조금씩 쓰고 있다. 겨우  정도일 뿐이다.  정도를 가지고 몰아붙인다고 하면  된다. 그건 너무 창피한 일이다.


나는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가 정말로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지 않는 이상 자기계발서를 여러 권 읽어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자기계발서보다 더 강력한 불쏘시개는 자기의 동기, 결심이다. 소파에 심드렁하게 누워 텔레비전을 보다가 와, 나도 살 빼서 저런 예쁜 옷 좀 입고 싶다, 고 생각하는 것과 건강이 되었든 복수가 되었든 일신상의 어떤 이유로 정말 살을 빼야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그 화력이 다를 게 뻔하다. 나도 그러한데, 가끔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동영상에서 자기 길을 묵묵하게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홀린 듯 보곤 한다. 주로 예술가들의 이야기다. 플룻을 전공하고 있는 어떤 여자가 세계에서 손꼽히는 음대로 진학하게 되었는데 학교의 연습실을 잡기 위해 매일같이 줄을 서야 한다고, 연습실을 잡게 되면 함께 줄을 섰던 사람들이 박수를 보낸다는 이야기를 했다. 세계적으로 천재라 손꼽히는 어떤 바이올리니스트는 실은 바이올린을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로 줄곧 연습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해야만 본인도 만족할 만한 실력을 겨우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게 자신을 몰아붙이는 것일 테다. 계속 그것만 생각하는 것, 남이 봤을 땐 질릴 법도 한데 계속해서 그것만 하는 것, 그러고도 여유 시간이 생기면 또 그것을 하는 것. 너무 멋진 삶이다, 그렇게 살면 참 좋겠다, 고 영상을 보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할 자신이 없다. 속세의 단맛을 봐버렸고, 의지도 없고 게으르다. 조금이라도 흉내 낼 자신이 없다. 그래서 매번 이런 영상을 보며 감탄하다가, 갑자기 나의 평온한 일상이 불온해 보여 못마땅해하다가, 며칠 뒤면 곧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절대로 나를 몰아붙인 적이 없고, 오랫동안 노력해본 일도 없다. 그랬다면 지금껏 내가 완성한 글이 적어도 십수 개는 있었겠지.


그럼에도, 사실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일생에 무언가 하나쯤은 이뤄보고 싶다는 욕망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자기계발서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명사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재생산되는 이유는 우리가 그것을 욕망하기 때문이다. 다들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것이다. 아마 앞서 말한 사람들처럼 대단한 일들은 아닐 것이다. 대개 건강하고 싶고, 새벽형 인간이 되어 하루를 보람차게 보내고 싶고,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다는 유의 욕망일 테지만 이런 욕망 역시 부단히 노력해야 이룰 수 있다. 명사의 노력은 감히 따라할 자신이 없는데 이 정도의 노력이라면 혹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살면서 만족스러운 글 한 편은 꼭 쓰는 것, 그러려면 여러 습작이 필요할 테니 계속해서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것에 집중하고 싶다. 노력을 안배해야 한다면 건강 관리에 조금, 나머지는 나의 바람에 다 쏟아붓고 싶다. 마음만 먹는다면 아마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정해진 시간에 책상에 앉는다. 글을 쓴다. 정해진 시간에 글쓰기를 끝낸다. 아, 말하고 보니 너무 쉽다. 안다. 말처럼 쉬웠더라면 자기계발서가 그렇게나 많이 출간되지 않았을 것이다. 좀처럼 마음먹기가 쉽지 않고 마음을 먹었더라도 자꾸만 딴짓을 하고 싶고, 좀 더 쉬운 행복감을 느끼고 싶다. 한때 소확행이란 단어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뜻으로 아침에 일어나서 맡은 빵 냄새, 따스한 햇볕, 햇볕을 받고서 말랑하게 늘어져 있는 고양이를 보는 것, 이런 것들을 이야기한다. 이런 것들이 종종 날 방해한다. 어쩌면 이런 행복은 나를 속이는 행복일지도 모르겠다. 즉각적으로 오감을 평온하게 하는 것들, 당장에 만족하도록 생각을 멈추게 만드는 감각들. 내가 했던 일들, 그림을 그리거나 옷을 만들거나 식물을 가꾸는 일도 이런 소확행에 가까워 보인다. 우리는 명사의 열정과 소확행을 함께 소비하는 사회에 산다. 정말로 이 둘을 함께 소비할 수 있을까? 그런 일은 대개 가능하지 않다. 무엇이 더 중요한가. 나는 글쓰기가 더 중요하다. 그렇다면 나를 몰아붙일 정도는 아니더라도 글쓰기를 꾸준히 하는 데에 무엇보다 집중해야 할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무력해지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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