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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람 Dec 11. 2022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

현주 언니와 이런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 아니, 언니에게 혼난다. 언니는 혼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하는 것뿐이라고 하는데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자꾸만 손끝이 움찔거리고 눈을 내리깔게 된다. 반성하게 된다. 언니는 내가 아는 사람 중 제일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일을 나가지 않으면 대개 연구실에서 공부하는 단순한 하루 일과를 벌써 수년째 반복하고 있다. 그 일과라는 것은 주중 상관 없이 오전 아홉 시쯤 나가 밤 열한 시쯤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언니는 전화를 받을 때마다 연구실에 있다.


나는 대학을 다닐 때 진실로 무엇을 배우고 있다거나 지식을 쌓고 있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는데, 수업 모두가 꼭 고등학교 4학년의 수업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읽고 암기하고 필기 시험을 치른다는 점에서 그랬다. 성인이 되어 무얼 배웠다면 그건 현주 언니에게서 배웠다. 일생에 언니 같은 사람을 만났다는 것은 복이다. 진짜로 복이다. 그러나 언니의 친구로 지내는 일이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다.


언니는 나를 좋아한다. 무척 아낀다. 그래서 자꾸 나의 무언가를 발굴하고자 한다. 게다가 (이 점이 제일 중요한데) 좀처럼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건 아마 언니가 제안하는 일을 내가 어쭙잖게나마 해내기 때문일 것이다. 언니가 처음 제안했던 일은 이거였다. 매일매일 어떤 제시어에 대해 오 분씩 글 쓰기, 단 백스페이스를 누르면 안 되고 그냥 쭉쭉 써내려가야 한다. 이건 언니와 함께하는 것으로, 마지막에 제시어를 적으면 다른 사람이 그걸 보고서 글을 쓰고 다시 제시어를 적어 글을 올리면 된다. 못 할 이유가 없었다. 당장에 카페를 만들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언니가 제안하는 일들은 대개 이런 식이다. 어렵지 않다. 쉽다. 어려우면 하고 싶지 않을 게 뻔하므로 할 수 있는 쉬운 걸 권한다. 하루에 오 분씩 잡담처럼 글 쓰는 것이 어려울 리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걸 사 년쯤 하고 있다. 여러 번 강조했지만 나는 게으르고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다. 어려우면 쳐다보고 싶지도 않다. 그 정도로 도전 욕구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이 정도는 메신저로 수다 떨기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부담감이 전혀 없고, 하물며 여행지에서도 태블릿 피씨가 있고 인터넷에 연결만 되어 있다면 오 분 글쓰기를 할 정도로 만만했다. 별것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도 이 글쓰기는 나의 글쓰기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이전에는 이게 정말 괜찮은 말인지, 괜찮은 구성인지 생각하느라 좀처럼 문장을 이어나가지 못하였었는데 지금은 그보다 편한 마음으로 글을 쭉쭉 써내려가고 있다. 문장과 구성 같은 건 나중에 생각하고 고치면 될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시간의 힘이란 게 정말 대단하다.


또 언니는 나에게 책을 읽게 하였고 차차로 글을 쓰게 만들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언니의 제안은 늘 쉽다. 평일에는 하루에 책을 한 시간 읽고 글을 이십 분 쓰기, 주말에는 삼십 분 읽고 이십 분 쓰기. 나는 이런 일을 어려워하지 않는다. 이십 분이라니, 할 만했다. 게다가 언니는 대개의 경우 내 글을 읽고서 피드백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언니에게 나의 글을 보이는 게 계면쩍고 부끄러웠는데 지금은 그냥 마구 쓴다. 언니가 나에게 기대하는 부분이 분명 있지만, 이를테면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길 바라며 독려하는 것은 맞지만 그게 나의 글에서 당장 드러나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때로 좀 잘 쓰기도, 때로는 엄청 못 쓰기도 해가면서 하루하루 실을 꼬아 옷 지을 준비를 한다.


그러나 언니는 글에 피드백하지 않을 뿐이지 나의 태도는 엄중히 꼬집는다. 이십 분씩 글 쓰는 것이 몇 개월쯤 이어지자 나의 글이 변하기 시작했다. 게을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알다시피 그런 건 티가 안 날 수 없다. 글 양이 짧아지고, 이건 손가락만 움직여 썼구나 싶은 글이 많아졌다. 쓰면서도 느껴졌지만 스스로 바로잡을 수 없었다. 얼마간 그걸 지켜보던 언니가 어느 날엔 지금 내 상태가 어떤지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별다른 이야기도 아니었다. 나도 느끼고 있던 내 행동에 대해 죽 읊었을 뿐이다. 감정적인 이야기도 하나 없었고, 부풀려 말하는 것도 없었다. 언니가 메신저로 그 이야기들을 죽 늘어놓을 때 나는 정말 창피해서 당장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싶었다. 입만 살아서 나불거리는 사람이란 게 또 한 번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얼굴이 새빨개졌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언니가 아니었으면 나는 조금 전 언니가 읊었던 그런 사람이 되어 회사와 집을 오가면서, 가끔 이런저런 취미 생활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나에게 무어가 좋고 좋지 않은지도 모른 채 그냥 되는 대로 시간을 보냈을 것이었다.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지는 못하여도 되도록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무엇이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드는가.


얼마 전에 언니가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자신을 몰아붙이지 않고서 뭘 할 수 있을까요. 오직 활동만이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 같아요. 노벨문학상이 소설가를 훌륭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쓰면서 보낸 시간이 소설가를 훌륭하게 만드는 것처럼요. 또 활동은 냉정해서 멈추면 그 가치가 사라져버려요. 몰아붙여서 얻는 성취가 아니라 몰아붙이는 시간이 가치 있는 것이고 널부러지면 가치도 그냥 사라져버리는 거예요. 고대 그리스에 이런 말이 있어요. 칼레파 따 깔라. 아름다운 것, 좋은 것, 훌륭한 것은 이뤄지기 어렵다는 말이에요. 어려운 것만이 인생에 가치가 있다는 거죠.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지금도 쉬운 길을 찾는다. 오늘도 로또를 샀고 당첨 번호를 조회하며 순간이나마 가슴이 두근거렸다. 스물다섯 개의 숫자 중 맞아떨어진 숫자가 단 두 개밖에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지만, 또 몇 주 뒤에는 헛된 기대에 부풀어 로또를 살 것이다. 아마 당분간은 가끔가다 로또를 사고 그 당첨금으로 무얼 할지 상상하는 일을 그만두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언니의 말에 동의하며, 그렇게 사는 것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다. 나도 계속해서 글을 쓰고 싶다. 인생에 가치 있는 활동을 찾고서 그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살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별안간 찾아온 과호흡 때문이다. 과호흡이 오면서 늘 똑같던 하루하루에 균열이 생겼고 균열이 생겨 생각을 달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나를 굴러가게 만드는 중심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건 오롯이 나만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금방 이룰 수 있는 것이어서도 안 된다. 중심축에 무거운 추를 매달아 내가 흔들거리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눈앞에 소파, 침대가 있다. 빨래도 해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한다. 장을 보러 가야 하고 세탁소에도 다녀와야 한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타협안을 제시하게 되는 것이다. 한 시까지는 쉬어도 되겠지, 오늘 하기로 했던 건 마트에 다녀와서 후딱 하면 돼.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히 할 수 있잖아? 할 수야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무성의는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며, 되레 이전에 쌓은 것들을 무너뜨린다. 결국 성실하고 꾸준히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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