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는 무서워서 변하기로 결심했다. 과호흡이 무섭다. 과호흡에 대한 글만 봐도 숨이 껄떡껄떡 넘어간다. 지금껏 겪었던 증상들이 다시 닥칠까 봐 초조해진다. 과호흡 증상은 새로운 환경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에 생기곤 했는데 그렇다면 중요한 건 역시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일이겠다 싶었다. 스트레스를 다스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찾은 방법은 주변 환경에 휘둘리지 않을 만한,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을 찾아 거기에 몰두하는 것이었다.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 나는 어디서 가치를 찾을 것인지 생각한 것도 결국은 그 때문이었다. 물론 제때에 잠을 자고, 몸을 적당히 움직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나는 무어에 그리 겁먹었나 싶다. 처음 떠난 해외여행, 처음 해본 직장 생활. 모든 처음에 겁먹고 나가떨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어떤 처음에는 온몸으로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물며 육아할 때에는 스트레스를 받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웬걸, 몸은 정반대로 반응하고 있었고 그제야 내가 육아에 부담과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 그랬던 걸까. 특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 같다. 처음 떠난 해외여행, 처음 해본 직장 생활처럼 육아란 삶이 뒤바뀌는 어떤 일일 것이라 각오하고 있었기 때문에, 육아를 신성하면서도 고통스러운 것이라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겉돌고 육아 밖의 것은 해내지 못할 것이라 짐작했다. 게다가 주변의 도움을 받지 않으리라 결심하였으므로 몇 년간은 나의 한계가 분명하다고 정해놓고 있었던 것 같다.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예 맞는 말도 아닌 것을 그때는 몰랐다.
육아가 힘든 이유 중 하나는 모든 육아가 똑같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와 친구들은 대개 비슷한 때에 결혼하여 비슷한 때에 아이를 낳았다. 직장과 거주 지역이 달라지면서 사이가 소원해졌었으나 임신하게 되면서 별안간 사이가 좋아지고 단체 채팅방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누구는 조언을 구했고 누구는 조언을 해주었다. 임신 기간에 체하거나 속이 울렁거리면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아이가 태어났을 때 무슨 검사까지 해주는 게 좋은가, 아이의 어린이집 신청은 언제 하는 것이 좋은가, 이유식은 무엇을 어떻게 해 먹이는 것이 좋은가. 우리는 아이 이야기를 참 많이 나눴는데 근래에 들어서야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환경도, 아이의 성향도 같을 수가 없는데 왜 그렇게 똑같은 육아를 하려고 노력했던 거지?
이유식만 해도 그렇다. 아이가 이유식을 먹을 때쯤이 되어 책을 한 권 샀다. 무엇을 먹여야 하는지, 어떻게 만들어 먹여야 하는지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아예 식단표가 예시되어 있는 책을 한 권 사서 꽤 열심히 살펴보았다. 친구들에게도 도움을 구했다. 어떤 준비물이 필요한지, 이유식은 쌀가루로 만들어 먹이는 게 좋은지 아님 쌀로 만들어 먹이는 게 좋은지, 이유식을 만드는 기계는 구입하는 게 좋은지 등을 물었다. 그렇게 해서 아이는 정확히 정량된 양의 쌀가루를 넣고 끓여 체에 한 번 거른, 아주 곱고 묽은 미음을 첫 이유식으로 먹었다. 그게 초기였다. 그 뒤로 중기, 후기, 완료기의 단계가 있었고 각 단계마다 2개월이 걸렸다. 초기는 재료 하나, 중기는 재료 둘, 후기는 재료 셋 혹은 그 이상이 들어갔는데 그러다 보니 그즈음에는 아이를 재우고서 부엌에 들어가 재료를 다듬고 얼려놓는 게 일상이었다. 완두콩을 삶아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내고 절구에 으깨어 큐브를 만들었다. 감자와 고구마도 삶아 으깨고 당근은 삶은 뒤 잘게 잘라 냉동고에 넣었다. 그렇게 해놓으면 이유식을 만드는 일이 한결 쉬워졌지만 이삼 일에 한 번은 밤이 늦도록 부엌에서 떠날 수가 없었다. 허리가 끊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때는 그렇게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는 게 고정불변의 원칙인 줄로만 알았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그런 음식을 먹지 않았다는 걸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아이는 꼭 책대로 만들어 먹여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인터넷을 보다 그사이 이유식의 트렌드가 바뀌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는 재료를 한데 섞어 끓인 죽보다 재료를 반찬처럼 올려 먹는 이유식을 더 선호한다고. 실소가 나왔다. 이렇게나 유행이 금방 바뀌는데 왜 그렇게 정석대로 만들어 먹이려 노력했던 거지. 그냥 지금처럼 편하게, 내가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어 먹여도 되었던 건데.
생각해보면 늘 이런 기준들이 주위에 있었다. 발달검사만 하더라도 아이가 가위로 종이를 오릴 수 있는지, 네모를 그릴 수 있는지, 한쪽 발로 콩콩 뛸 수 있는지 시기마다 확인해야 했다. 나는 아이를 보통의 아이로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건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으므로 우리는 이런 기준에서 눈을 돌릴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똑같이 성장하지 않았다. 어떤 아이는 고기 반찬을 좋아했고 어떤 아이는 좋아하지 않았다. 어떤 아이는 가위질을 좋아했고 어떤 아이는 검사지에 가위질을 할 수 없다고 답해야 했다. 보호자가 외출하는 것을 좋아하여 어렸을 때부터 여행을 다닌 아이도 있었고 보호자가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여 책을 읽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걸 좋아하는 아이도 있었다. 결국 우리는 제각각의 육아를 하고 있었다. 이런데도 그토록 촘촘하게 짜져 있는 기준을 유의미하다고 보아야 할 것인가. 보통의 육아를 하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가.
만약 둘째를 낳아 기른다면 아마 나의 육아는 이전과 다를 것이다. 오늘은 또 뭘 먹여야 하나 중얼거리며 이유식 메뉴를 검색해보거나 이유식 책을 들춰보긴 하겠지만 때맞춰 갖가지 곡물이나 채소, 나도 몇 번 먹어보지 않았던 것들을 굳이 손질하지는 않을 것이다. 발달검사지의 항목을 미리 보아두었다가 아이가 그걸 익히도록 이끌지 않을 것이다. 여유가 생기면 하루에 한두 시간씩 책을 읽고 글을 쓸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아이와 시간을 보내면서 굳이 무언가 해주려고도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 아이와 함께 있는 게 자연스러워지도록 노력할 것이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친구 사이가 있는 것처럼 아이와도 그런 관계가 될 수 있도록 잘 지내보고 싶다.
아이를 막 낳았을 때는 이런 걸 알지 못했다. 아이와 50여 개월을 보냈기 때문에 알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아이와 싸우거나 나 혼자 속을 부글부글 끓이는 일도 적지 않지만 그래도 지금의 육아가 맘에 든다. 나는 이전보다 건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