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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연이 Dec 18. 2023

덕후의 심리?

덕주는 불쏘시개


모든 덕후들이 그러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필요했다.


스스로를 납득시킬만한 이유가.


마흔이 넘어 아이돌에게 빠진 심리가 궁금했다.


혹시, 나 어디 아픈 거?


어쩌면 아픈 것이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래야 나의 행동을 합리화시킬 수 있고, 어떡해서든 벗어나야 한다는 뜻이었으니.



만성 우울증이 그랬다.


인간관계를 피하고, 무기력한 삶을 사는데 적당한 핑계를 만들어줬다.


다른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변명하기가 편했다.


물론, 깊은 마음속에선 어떤 이유에도 설득당하지 않을 강력하고 삐딱한 내가 있었다.




결혼 후엔 다른 누구보다 남편에게 이해받고 싶었다.


날 도와주길 바랐다.


하지만 남편은 언제나 바빴다.


일에 치이고, 친구들과 술로 푸는 것이 낙이었다.


틈틈이 좋아하는 농구도 하러 가야 했기 때문에 나와 아이에게 쏟을 시간이 없었다.


꽁한 나는 아직도 그것을 마음에 품고 있다.


가장 절실할 때 곁에 있지 않아 놓고선, 혼자가 편할 때가 되자 챙겨달라, 놀아달라고 징징거린다.



10년 가까이 혼술은 나의 유일한 도피처였다.


알코올 중독은 아니라며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텼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만 설득할 수 있으면 되었지만, 그게 가장 어려웠다.


술 마시는 날을 줄이고자 수없이 노력했다.


하지만 번번이 예전 습관으로 돌아갔다.


이틀에 한 번만 마시자는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알코올 중독 자라는걸.


그리고 인정하는 순간, 저녁마다 혼술을 즐기는 내가 역겹게 느껴졌다.


엄마 자격도 없는 쓰레기 같았다.


어쩌면 아이들이 없었다면 굳이 금주를 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을 수도.


좋은 엄마는 못 되더라도 최소한 알코올 중독자 엄마로 남고 싶진 않았다.



금주를 한 지 3년이 다 되어간다.


2년이 지나고서는 절대 술 생각이 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고비가 왔다.


얼음같이 차가운 맥주와 영롱한 막걸리의 빛깔을 보며 군침을 흘린다.


술을 마시고 죄책감을 느끼는 꿈을 꾸기도 했다.


대리만족을 잘하기 때문에 술방을 찾아봤는데 요즘은 위험하다.


술방 재밌는 게 왜 이렇게 많지?



최애 그룹 멤버 한 명이 라이브 중에 ‘으른들의 보리차’라며 맥주를 마시는 걸 봤다.


끝까지 보리차라고 우겼지만, 우수에 찬 눈빛이 슬퍼 보였다.


콘서트를 마친 후 공허함을 뭘로 달랠 수 있을까?


그는 너무 지쳐 보였다.


굳이 라이브를 켜지 않고 혼자서 맥주 한 잔 들이켤 수도 있었을 것이다.


‘으른들의 보리차’라고 말하면서까지 라이브를 한 것은 맥주만으론 쓸쓸한 마음을 달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환상적인 무대를 마치고 현실로 돌아왔을 때 괴리감도 상당할 것 같다.


그래서 절실히 필요한 건 지난 환상이 꿈이 아이라는 걸 상기시켜 줄 이들이 아니었을지…….




2018년도에 방탄소년단은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특히 뷔는 번아웃이 심했던 모양이다.


하던 대로 달려가는 게 맞다는 걸 알면서도 쉴 쉼 없는 스케줄을 소화하며 몸도 지치고 심적으로 고통스러웠던 것 같다.


아이돌의 삶이 녹록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밥 먹을 시간도 없고, 잠잘 시간도 부족한 현실이 안타까웠다.


대중들의 기대와 시선은 또 얼마나 부담스럽겠는가.


팬들의 사랑을 먹고사는 아이돌에게는 팬을 가장한 안티도 있다.


죽을 것 같이 힘든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쉼 없이 콘서트를 돌며 체력을 깎아 먹으면서 평생 듣지 않아도 될 비난까지 받아내야 하는 것이다.


팬이라는 이유로 무례한 질문이나 요구도 서슴지 않는다.


여기에까지 생각이 미치면 모든 아이돌들이 존경스럽다.



아마도 난 그들에게서 한 번도 가져 본 적 없는 열정을 찾는 건 아닐까?


폭발할 것 같은 에너지와 열정이 내 심장을 어택 한다.


그들처럼 모든 걸 쏟아부을 순 없더라도 지금보다는 열심히 살아야 하지 않겠냐며 스스로를 다그친다.


그들에게 자극을 받으며 처음부터 없었던 불씨를 살려내려 부채질한다.


팔이 빠져라 부채질을 하면 마음 깊숙이 파묻혀 있던 작은 불쏘시개를 찾을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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