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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운 Mar 02. 2023

#3. 창업은 처음이라서요

20대 직장인이 독립서점을 열기까지

방향은 아는데, 걸음을 뗄 수 없는 길치의 기분이 되어보셨는지...

(참고로 나는 방향치까지 포함된 진정한 길치이기에 익숙한 기분이다)


독립서점을 열기로 마음을 먹긴 먹었는데, 참으로 막막한 기분이었다.

로맨틱하게 표현해서 '책방지기가 되는 것'이지,

현실적으로는 다짜고짜 '창업'을 해야 하는 상황인 것.


창업은 죽었다 깨어나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1990년대에 이 나라에 태어난 후 대한민국 교육의 정석대로 컸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하면 당연히 취업을 해야 하는 것으로 배웠으며, 어쩌다 보니 한 번 샛길로 빠질 틈도 없이 정상궤도에 맞게 무사히 원하던 직장에 안착했으니 말이다.


상상 속으로는 이미 아늑한 책방에서 프로처럼 서가를 정리하는 책방지기인데, 현실에서는 간이과세자와 일반과세자의 차이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생초짜가 허우적대고 있었더랬다...


업을 창조해야 하는 것, 그 낯설고도 자신없는 것과의 거리감을 좀처럼 좁히지 못한 채 하릴없이 시간은 흘렀다.

평소에도 나대는 걸 싫어하고(못하는 쪽에 가깝다), 주어진 일만 하고 살던 나에게 업의 창조주가 되라니, 이대로 가다간 뭔가 펼쳐보기도 전에 판을 접게 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결국 세상에 어떤 고민을 마주하더라도 틀리던 맞던 결국엔 답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에게 자문을 구하기로 했다. 나와는 혈연관계이자 태어나 처음 만난 친구이자 지금까지 제일 오래된 친구인 한 사람,

엄마에게.


엄마는 수십 년간 익힌 공예 기술 및 본투비 손맛이 타고난 요리 기술로 이미 몇 번의 가게를 열고 닫아본 경력 다수의 자영업자였다(닫아본 적도 있다는 것 역시 유쾌하고도 중요한 포인트다).

그녀가 모르는 창업의 기초는 없으리라.


독립서점을 하고 싶은데 진도가 안 나간다는 나의 구구절절한 설명에 그녀는 뒷말은 컷트하고 쿨한 조언을 던졌다.

"사업자등록증부터 파봐, 그럼 하게 될걸? “


피고용인이 대표가 되었다는 공식 인증서, 바로 “사업자등록증”. 그것부터 발급받으면 진짜 시작인 거구나! 근데 나 4대 보험 나오는 직장인인데…


결론은 나는 사업자등록증을 받을 수 없는 신분이었던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꿈의 2차 붕괴 위기.

결국 업의 창조주가 되기 위한 분투에 나의 창조주가 필요해졌다.


그녀의 공예 기술과 작품을 서점에 녹아낸 서점&핸드메이드 멀티공간을 꾸리면 더욱 콘텐츠도 풍부해질 터.

새 멤버를 영입하고 팀이 된 우리는 R&R을 정리했다.

엄마 : 대표, 공방지기, 핸드메이드 물건 작업, 판매 등 '핸드메이드' 관련 일을 전부 처리한다

딸(나) : 직원, 책방지기, 책 큐레이팅과 입출고, 도서 배가, 북클럽 운영 등 '책' 관련 일을 전부 처리한다.


든든한 지원군도 얻었겠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우리 팀은 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평일엔 자유를 조직에 상납한 나 대신, 엄마가 바로 세무서로 출동했다.


‘띵‘


카톡으로 툭하니 던져진 사업자등록증 사진.

우리가 함께 고민한 상호명이 당당하게 쓰인 그 한 장의 종이가 업의 창조를 증명해 준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속 빈종이에는 작은 점 하나가 콕하고 찍혔다.

그 점 하나만으로, 난 이미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로 연결됨을 느꼈다.


이젠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사실 돌이키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말이다.

늘 백업과 플랜비를 준비하며 확신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온 나로서는 스스로조차 기이하게 느껴질 만큼의 확신이었다.


등록된 사업자로서의 삶이 이제는 진짜 시작된 순간이었다. 이제는 차례로 점을 찍어갈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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