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한마당 행사로 학교 전체가 왁자하던 어느 가을날, 수능을 40일 앞두고 중간고사가 끝난 제자들이 나를 찾았다. 3년 만에 찾아온 모교에는 전근으로 존경하던 선생님들께서 대부분 떠나가 자리에 계시지 않았고, 제자들은 떠나간 선생님들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을 한숨으로 내비쳤다.
그리고 잠시 동안의 대화에서 나는 나에게 수업을 들을 때에는 솜털같이 어리던 아이들의 눈망울이 어느덧 무겁고도 복잡한 어른의 눈매로 변해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렇게 눈망울이 눈매로 변모한 뿌리에는 필시 흠뻑 쏟아지는 고난한 압박감이 있었으리라… 고등학교 3년을 거치는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항상 짙은 그림자가 있다.
고작 열세 살이 갓 넘은 아이들을 지도하며 꿈과 미래를 다그칠 때에는 마음속 깊은 한 구석에 죄책감이 가시질 않는다. 고작 한 줌의 그들의 삶에 중대한 짐을 짊어 지울 수 있을 만큼 많은 경험과 이해가 축적되어 있겠는가? 택도 없다!
그렇지만 현실은 아이들에게 선택과 결정을 쏘아붙인다. 3년을 시달린 아이들은 고등학교로 떠나며 두려워하고, 6년을 시달린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떠나며 저마다 그림자 하나씩을 마음속에 간직하게 된다. 때문에 아이들에게 항상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다 행복하려고 하는 일이다.”
뻔하면서도 듣고 보면 묘하게 마음을 울리는 문장이다. 사실은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인 것 같기도 하다.
어릴 적부터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고 종용받아왔다. 부모님, 선생님들, 친구들 중 누군가 강요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어련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모두가 인서울 4년제 대학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서로의 머리와 마음에 불을 지펴왔다.
실제로도 대학은 나에게 중요한 삶의 전환점이었다. 어렴풋이 물리학이 좋던 나는 물리학자가 되고 싶어 물리학을 전공했고, 생각보다 물리학은 어려웠고, 아이러니하게도 물리학만큼 가르치는 일이 좋았기에 나는 운 좋게도 교사가 되었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내 머릿속 깊숙하게 새겨 넣어진 목표 지향적 완벽주의 사고방식은 지금껏 내 삶에 지대하고도 집요하게 영향을 미쳐왔다. 나는 어느 날인가 실패와 포기를 몹시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지금도 동료 교사들 앞에서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몇 번이고 어떤 말을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 되뇌고, 자료를 수 차례 검토하고, 발표가 끝난 날에는 스트레스성 소화 불량으로 꼬박 하루를 앓아눕는다.
물리학에는 무게 중심이라는 개념이 있다. 땅을 딛고 지지하는 두 발 사이에 무게 중심이 있을 때에만 우리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안정적인 상태로 지면 위에 서 있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말 그대로 ‘짐’을 어느 한쪽에 짊어지는 순간 무게 중심은 나의 중심에서 벗어나서 나와 짐 사이의 어딘가 한 점에 위치하게 된다. 짐이 무거울수록 나의 무게 중심보다는 짐의 무게 중심에 가깝게 점차 옮겨져 가게 된다.
그러다 나의 발 간격을 넘어선 위치까지 무게 중심이 옮겨갈 정도로 큰 질량의 짐을 짊어지게 되면…
이윽고 우리는 넘어지게 된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좋은 직업을 얻고, 저축과 투자를 하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승진을 하며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방식으로 서서히 나의 무게 중심은 내 중심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행복하다. 하지만 가끔은 내가 나를 잃은 것 같아서 세상이 회색 빛으로 보이는 순간이 있다. 그 짧은 순간이면 무척이나 씁쓸한 마음속 파도가 밀려온다.
내가 그토록 실패와 고난을 두려워하는 것 또한 중심이 나에게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에 쌓은 짐들을 들고 외줄 타듯 먼 길을 나아가는 서커스 단원으로 살아온 삶이 이제는 너무나 길기에 저 먼 바닥을 내려다 보기가 두렵게 느껴진다. 한 번의 실패는 줄 없이 번지점프를 뛰어내리듯 아찔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정말로 다행인 사실은 생각보다 나는 그렇게 높은 외줄에 올라서있지 않다는 것이다. 나를 믿고 지지해 주는 가족, 동료, 친구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야 조금씩 느끼고 있다. 그래서 가끔은 의식적으로 짐을 내려놓으려고 한다. 짐을 쌓아가며 바뀌었던 무게 중심은 오로지 짐을 내려놓은 그 순간에만 온전히 나에게로 되돌아온다. 비로소 나의 중심을 찾는 순간만큼 찬란한 시간이 없다. 미끄러지던, 넘어지던, 옆으로 구르던, 뛰어내리던 그 순간만큼은 나의 중심은 항상 나의 중심에 있다. 양 발만 땅에 잘 디뎌 놓으면 금방 다시 안정된 상태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사실 어쩌면 별 일도 아니다. 그냥 힙하고 북적거리는 카페에 홀로 가서 서너 시간 정도 시간을 죽이며 공상에 잠기기. 오늘의 할 일을 내일의 나를 믿고 내려놓기. 잠시간 책임감을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맡겨 놓기… 내가 나를 사랑할 시간을 잠시간 가지고 나면 다시 묘기를 부릴 신체적·정신적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다 행복하려고 하는 일이다. 어느 날엔가 무게 중심이 내가 감당 불가능한 바깥까지 옮겨진 것 같은 날에는 잠시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 보자. 자연이 자연스럽게 평형점을 찾아 움직이고 항상성을 유지하듯 나의 중심을 되찾고 잠시 기다리면 다시금 안정된 나 자신을 느껴볼 수 있다. 생각보다 나는 건강하고, 튼튼하고,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다. 제자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와 그리고 이 글을 읽은 독자들 모두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