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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속의 두더지 Sep 26. 2022

게으른 내가 아들의 밥에 진심인 이유

나에겐 아들이 하나 있다. 내 인생에 딸은 없을 예정이라 (아들 하나로 끄읕!) 아쉽기는 하지만 한편으론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나는 (있지도 않은) 내 딸에게 우리 엄마처럼 해주지 못할 것이 너무나 확실하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엄마가 나에게 해주었던 것들이 잔상으로 남아 비슷하게라도 해주고 싶어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나에게 아침 밥상에 올라왔던 반찬을 저녁에 다시 준 적이 (거의) 없다. 아침엔 늘 아침에 한 반찬들이 식탁에 올려져 있었고 저녁엔 저녁에 새로 만든 반찬들로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언니와 내가 성인이 된 이후로는 저녁에 맥주도 한잔하며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나누는 것이 내가 기억하는 우리 원 씨 가족의 일상이었다.


엄마는 내가 고3 수험생일 때에는 도시락을 하루에 세 개씩 싸곤 했다. 그 무렵 나와 같이 수험생이었던 아빠의 점심, 저녁 도시락과 내 저녁 도시락. 종종 엄마는 갓 한 밥과 반찬을 내게 먹이고 싶어서 저녁식사 시간에 맞춰 학교를 찾아오기도 했다. 그럼 난 운동장 한편에 주차한 차 속에 앉아 엄마가 바로 해 온 뜨끈뜨끈한 밥을 별생각 없이 먹곤 했다.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내 인생을 돌아보면 순간순간 속에 엄마가 해준 음식들이 담겨있다. 어릴 적 크리스마스 이브에 엄마가 산처럼 해준 탕수육이 그러했고 평상시에 먹던 달걀말이와 김치찌개로 싸준 수능 도시락이 그러했고 서율이를 낳고 맞이했던 설날, 산후조리원으로 바리바리 보내준 설 음식들이 그러했다.


봄이 되면 엄마는 해마다 마늘종, 두릅으로 꼬지 전을 해준다. “얘네들이 겨울을 이겨내고 싹을 틔운 거야. 이건 봄기운을 먹는 거야.” 올해도 역시나 엄마는 내게 꼬지 전을 보내주었다.


나는 이런 내 엄마의 밥을 먹고 자랐다. 그래서 게으른 나는 서율이에게 밥이라도, 밥만이라도 잘해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물론 이것마저도 정말이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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