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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속의 두더지 Sep 30. 2022

엄마의 김밥

엄마는 요리 솜씨가 좋다. 엄마는 맛의 고장이라는 전주에서 나고 자라 내가 어릴 적부터 온갖 음식을 해주었다. 더운 여름 소뼈를 사다 고아내고 냉동고에 살짝 얼려둔 육수를 부어 만든 물냉면이라던가, 밀가루 반죽을 병으로 직접 밀어 만든 피자라던가. 내가 말만 하면 “그게 뭐 일이라고.”하며 뚝딱- 먹고 싶은 음식들을 차려냈다.


엄마의 음식을 생각해본다. 재료를 아끼지 않고 모든지 넉넉하게. 재료를 아끼지 않는 엄마의 음식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김밥이다. 전라도 아줌마들의 김밥이 모두 뚱뚱한지 우리 이여사의 김밥만 뚱뚱한지 아직 확인해보지 못했지만 엄마의 김밥은 누구 하나 혼내 줄 수 있는 몽둥이로 쓸 수 있을 만큼 두껍고 땅땅했다.


어릴 적 소풍을 가는 날이면 김밥 싸는 엄마 옆에서 꼬다리라고 불리는 김밥의 끝부분을 받아먹고는 했다. 입이 찢어질세라 크게 벌려야만 먹을 수 있던 엄마의 김밥. 예쁘게 썰어놓은 김밥은 나와 언니의 도시락통에 쏙쏙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새벽부터 엄마가 싼 김밥과 전날 밤 사둔 과자를 싸들고 소풍을 갔다. 그리고 점심시간.


친구들의 김밥은 정말이지 작고 작았다. 내 김밥의 반이나 될까? 당근의 개수를 셀 수 있을 만큼 조그맣고 앙증맞게 말아져 있었다. 친구들과 김밥 몇 개 바꿔 먹곤 했지만 역시나 내 입맛엔 우리 엄마 김밥이 딱이었다. 때때로 귀엽고 작은 김밥이 부럽기도 했으나 역시나 맛있는 건 내 엄마의 몽둥이 김밥이었다.


서율이가 자라 종종 집에 있는 재료들로 김밥을 쌀 때가 있다. 나는 김밥을 썰다 서율이와 남편에게 먹어봐 하며 입에 쏙 넣어준다. 김밥 꼬다리를 얻어먹은 나의 서율은 “맛있어요”하고 소리치며 다다다다 김밥을 써는 내게 다가온다. “또 주세요” 하면 나는 또다시 김밥 하나를 스윽스윽 쓸어 서율의 입에 쏙 넣는다. 새끼 새에게 먹이를 주는 어미새가 된 기분이다.


엄마도 내가 김밥을 받아먹을 때 먹지 않아도 이렇게도 배가 불렀을까.(불렀겠지! 당연하지!)


나의 김밥도 엄마의 김밥 못지않게 두툼하다. 아직 세 살밖에 안 된 서율이가 먹기엔 조금 버거울 만큼. 어쩌겠나. 나는 우리 엄마의 딸인걸. 먼 훗날 우리 서율이도 김밥을 싸서 아이의 입에 쏙쏙 넣어주는 행복이 함께 하기를 하고 바라본다.


아이가 생긴 후 김밥 하나도 행복이 된다. 그리고 김밥 하나에도 엄마 생각이 난다. 불현듯 나는 언젠가 김밥 하나에도 많은 눈물이 나겠구나 싶어 조금은 무섭다. 엄마가 내 곁에 없을 순간이, 어리고 어린 나의 서율이 커버린 시간이 벌써부터 슬프다.


종종 엄마의 김밥을 몇 번이나 더 먹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 나는 서율이에게 몇 번의 김밥을 싸 줄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엄마의 김밥도 나의 김밥도 아직은 많이 남아있기를 하고 바란다.


맙소사, 엄마가 된 나는 김밥 하나에도 소망을 담는다.

(아줌마가 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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