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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o Oct 04. 2024

44. 우리 숙소 앞에 경찰차와 경찰 몇 명이 서있다.

에콰도르 | 그대들은 오늘에 충실한가?

가자 아마존으로.


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바로 아마존으로 향한 것은 아니다.(머쓱)

모든 일에는 과정과 순서가 있는 법.

아마존으로 가기 위한 여정이 시작될 뿐이다.




조금 더 여행을 계속해보기로 한 나는 다음날 새로운 마음으로 호텔을 나섰다.

잃은 것이 많아 짐은 많이 가벼워졌지만, 어째선지 마음도 가벼웠다.


콜롬비아와 에콰도르의 국경마을 이피알레스에는 라스라하스 성당(Sanctuary of Las Lajas)이라는 곳이 있다.

절벽에 세워진 성당으로 사진으로만 봐도 아주 멋진 장소였다.

원래 계획은 이곳에서 이 성당을 구경하고 에콰도르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마음,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출발을 했다곤 하나 더 이상 콜롬비아에 있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사뿐하게 무시하고 국경을 나서기로 했다.

(그래서 사진은 없으니, 궁금하면 구글링 해보길 권장한다.)


숙소에서 조금 걸어가다 보니 다리가 눈앞에 보인다.

그 다리 너머에 에콰도르라는 간판(?)이 보인다.

저 다리만 넘으면 콜롬비아는 이제 안녕이다.


삼면이 바다에 나머지 한 면은 갈 수 없는 우리나라는 말이 반도지 사실상 섬이나 다름없다.

우린 외국을 가려면 배나 비행기를 타야만 한다.

그래서 걸어서 국경을 넘는다는 건 한국인에겐 참 생소한 경험이다.

공항에서 거치는 삼엄한 짐 검사와 출입국 과정을 생각하면 육로는 훨씬 간단하고 쉽게 이루어지는 느낌이다.



에콰도르가 눈앞에 보인다.



드디어 콜롬비아를 떠나 남미 두 번째 나라 에콰도르에 입국했다.


다시 여행을 하기로 한 이상 나는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재정비를 해야 했다.

언제 수명을 다 할지 모르는 이 핸드폰을 대신할 새 핸드폰을 사야 했고, 카메라도 사야 했다.

이놈의 도둑노무쉐끼는 가져갈 거면 다 가져가지 애매하게 렌즈 이런 건 또 내버려 두고 가서, 가급적이면 이 렌즈와 호환이 되는 모델로 살 계획이다. 액션캠도 사야 했다. 노트북도 없어졌는데.... 잃어버린 모든 것을 다시 갖추려니 아찔해졌다.

일단 정말 급한 것이 무엇인지, 그것만 사고 나머지는 나중에 필요하면 천천히 구비하는 걸로 일단 정했다.

(후 내 지갑 ㅠ)


자연스럽게 다음 목적지는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Quito)로 정해졌다.

왜? 폰이랑 카메라 사야 하니까 ㅎ


...


버스를 타고 키토에 도착했다. (빠른 전개)

오는 길에 버스 안에서 한 일본인 여행자를 만났고, 그새 좀 친해져서 그와 같은 숙소에 체크인을 하게 되었다.

이어서 시내에 쇼핑을 하러 나섰다. 급한 대로 미러리스 카메라 한대와 태블릿 하나로 당분간을 버텨보기로 했다.

워드로 일기를 쓰거나 외장하드에 있는 파일을 관리하는 게 전부였던 나에게 노트북은 사치였고(더 이상 관리할 파일도 외장하드도 없다...ㅎ), 이후의 사진이나 영상 등은 인터넷 클라우드에 저장하는 것으로 외장하드를 대체하기로 했다. (진작에 이렇게 할걸..)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 나는 매일 일기를 썼었다.

일기를 미룬 적은 있지만 빼먹은 적은 없다.

일생에 단 한 번 뿐일(지도 모르는) 세계일주 여행의 모든 것을 기억하기 위해.

지난 3개월간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일기를 썼었다.


그리고 강도를 만나 모든 것을 잃으면서 그 일기도 사라졌다.


나는 중간부터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이상 일기를 쓰지 않기로 했다.

더 이상 일기를 쓰지 않기로 한 것은 중간부터 다시 무언갈 하고 싶지 않은 성격에 '에라 모르겠다'란 자포자기의 마음이 더해져 내린 결정이었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 덕에 얻은 깨달음도 있다.


터키에서 처음 만났다 이후 한동안 같이 여행을 한 형이 있다.(스포주의)

우꾼형은 자신의 여행을 블로그에 기록했는데 어디를 가던, 무엇을 먹고 어떤 일을 하던 형의 포커스는 언제나 블로그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kyo야 고맙다. 네 덕분에 오늘 블로그 쓸거리 생겼어."

특별한 이벤트가 발생할 때마다 우꾼형이 했던 말이다.


전날 술을 진탕 마시고 늦잠을 자고 일어나면, 우꾼형은 언제나처럼 새벽같이 일어나 블로그를 쓰고 있었다.

형은 좋아서 시작한 블로그겠지만, 어쩔 땐 그것이 숙제처럼 보이곤 했다. 마치 내 일기처럼.


여행을 하다 보면 새로 사귄 친구들과 혹은 숙소에서 만난 다른 여행자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놀 때도 있고, 숙소가 같다 보니 가끔은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진탕 마시며 노는 날도 있다.

당연히 그런 날은 일기를 쓸 수 없다. 그렇게 하루 밀린 일기는 이틀이 되고, 일주일이 되곤 했다.

초등학교 때 몰아 쓴 일기는 성인이 되어도 변함없다.


일기가 숙제가 되어 나에게 부담이 되는 것이 싫었다.


(그렇다고 우꾼형의 여행스타일이 틀렸다거나 나쁘다는 건 절대 아니다. 나는 형의 여행스타일을 존중하고, 좋아라 한다. 다만, 나와는 다름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다름과 틀림을 구분할 줄 아는 것. 그게 우리 어른들이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또 있다.


일기는 나의 과거를 알려줬다.

일기를 읽으면 그때의 나로 돌아간다.

만약 그 뒤로도 매일 일기를 썼더라면,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그때 그랬나? 이랬나? 얘를 만날 때가 언제지? 이름이 뭐였지? 아 그때 이런 일도 했구나 이런 감정이었구나 등의 디테일한 기록이 남아있을 것이다.

다시 일기를 꺼내 읽는 순간, 그때 그 순간으로 빠져들 것이다.

세계일주를 하는 동안 나는 매 순간 그때에 충실했다. 그래서 행복했다.

그랬기에, 그 시절을 추억하는 순간. 그 시절 행복했던 나와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 때의 나를 그리워하고 부러워할 것 같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먼 훗날, 오늘을 추억했을 때. 그곳에는 세계일주 할 때나를 그리워하는 내가 있을 것 같았다.

오늘에 충실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내가 아니라, 지나간 과거에 연연하고 그리워하는 내가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이 싫었다.


세계일주 할 때는 그때의 내가 열심히 그 순간에 충실했다.

그건 그걸로 끝내고, 오늘의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야 한다.


오늘에 충실한 삶. 나는 이것이 중요하기에,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다.


(모든 순간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그 기억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분명 내 안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쇼핑몰에서 갤럭시탭을 샀다.

한국에서보다 더 비싼 가격에.

멀리 외국에서 한국 물건을 더 비싼 돈 주고 사려니 아까운 마음도 들지만, 어쩌랴 선택지가 없는 것을.

카메라 가게도 둘러보았는데, 내가 한국에서 샀던 카메라보다 한 단계 아래 모델을 판매하고 있었다.

물론 가격은 상위버전이었던 내 원래 카메라와 비슷한 가격으로.

렌즈 호환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지만, 썩 내키지 않아 망설이고 있을 때 카메라 가게 주인이 알려주었다. 다른 매장에 원래 내가 가지고 있던 카메라보다 상위 버전의 카메라의 중고품이 있다고.

내일까지 자기네 매장에 갖다 놓을 테니 다시 오란다.

차라리 그게 낫겠다 싶어 내일을 기약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버스에서 만나 함께 체크인을 한 일본인 남자애를 만났다.

우리가 머무른 숙소는 호스텔의 도미토리였는데, 같은 동양인이라 그랬는지 같은 방으로 배정해 주었기에 같이 숙소로 들어가려는데..



우리 숙소 앞에 경찰차와 경찰 몇 명이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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