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경험이 취향을 만든다는 착각

내가 좋아하는 건 소비의 결과일까, 감각의 누적일까?

by 무스꾜

밀라노에 살면서 관심 없던 클래식 음악을 듣게 되고, 피아노 공연에 가게 됐다. 그런데 이건 돈이 있어서 가능한 경험이 절대 아니다. 큰 도시라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니라, 작은 시골 동네에서도 성당에서 울려 퍼지는 무료 리사이틀이나 광장의 연주에 얼마든지 접속할 수 있다. 중요한 건 ‘환경이 주는 다양한 시도’ 속에 내가 충분히 오래 머물렀다는 사실이다. 귀가 열릴 만큼의 시간, 여러 번 비교해볼 수 있는 기회, 그냥 “들어볼까?” 하고 스스로를 꺼내 놓는 순간들. 이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며 취향의 방향이 만들어졌다.


여행을 다니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전엔 도시의 아스팔트가 익숙했지만, 자주 자연을 보게 되면서 내가 좋아하는 색과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어느 순간부터 자연과 어울리는 과감한 밝은 색, 바람처럼 가벼운 하얀 옷, 패턴이 많은 원단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소비를 많이 해서가 아니라, 자연이라는 다른 환경에서 반복해서 시각이 자극되자 감각의 기준이 달라진 것이다.


물론 재밌는 건, 그렇게 밝은 색에 반응하던 나도 겨울이 오면 다시 축축한 날씨 때문에 알록달록한 옷을 잘 안 입게 된다는 점이다. 사실 매장만 둘러봐도 바로 알 수 있다. 잘 안 팔린다는 걸. 그리고 잘 안 팔린다는 건 생산자들이 ‘수요가 없다’고 판단해 잘 안 만들게 된다는 뜻이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선택폭이 좁아진다. 바로 그 지점에서 취향의 폭이 드러난다. 계절, 환경, 시장의 흐름이 제시하는 몇 개의 옵션 안에서만 고르는 사람이 될지, 선택지가 줄어들어도 여전히 나를 설명할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 될지는 결국 나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결국, 취향은 돈으로 사는 경험이 아니라 시간·환경·시도라는 세 요소가 누적되며 만들어지는 감각의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주어진 선택지가 아니라, 선택지가 줄어드는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 기준’. 취향은 소비력보다 시도력에서, 빠른 경험보다 긴 호흡의 경험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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