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이야기를 읽고
이번에는 송나라 이야기를 읽었다. 송나라 하면 문득 떠오르는 드라마가 있다. 중국 드라마 대송북두사.
판타지와 수사물이 섞여 아무 생각 없이 보기 좋은 작품이었다. 긴장감 없이 흘러가는 이야기라 스킵도 하지 않고 끝까지 봤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다시 찾아보니, 어쩜 이렇게 하나도 기억이 안 날까.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다. 역시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송나라는 태평성대라 불릴 만큼 문화적으로 크게 발전한 시대였다.
무엇보다 세계 문명의 흐름을 바꾸어놓은 화약, 나침반, 인쇄술이 모두 송나라 때 비롯되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p115).
이때 중국 인구가 처음 1억 명을 넘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그런데 지금은 성터도, 개봉(開封)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다. 지하 15미터 아래 묻힌 채, 이제는 추억 속 도시로만 남아 있다(p118)는 게 아쉬웠다.
“송나라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후에 해당한다. 천 년 전 역사를 글로 아무리 생생히 묘사한다고 하더라도, 천 년이라는 시간의 격차는 까마득하여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은 막연하게만 느껴진다. 타임머신이 없는 이상 그때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역사 기록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p114)
이 문장을 읽으며 생각했다.
우리는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돌아갈 수 없기에,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과 삶을 기록으로만 짐작할 뿐이다. 아마 먼 미래의 누군가는 우리가 남긴 사이버 기록을 보며 지금의 우리를 해석하겠지.
책을 읽다 보니 문득 상상을 했다. 만약 내가 송나라 황제였다면, 왕안석과 사마광 중 누구를 선택했을까? 나는 왕안석을 택했을 것 같다. 그가 내놓은 부국강병의 신법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정치는 잘 모르지만, 모두가 조금 더 공평하게 살 수 있는 제도 같았다.
신법과 구법의 대립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지금의 현실 정치가 떠올랐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신법은 개혁파, 구법은 보수파이다.
그 구도가 지금과도 닮아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각자의 ‘옳음’을 믿고 싸운다.
정치는 늘 어렵고, 또 어딘가 피곤하다.
나 역시 한때는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뉴스에 나오는 건 늘 다툼과 비난뿐이었고,
그 속에서 진심을 찾기란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정치란 ‘권력자들의 싸움’이라 생각했고,
그 싸움은 내 삶과는 먼 이야기라 여겼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세상을 다시 보게 되었다.
정치는 결국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최소한의 기본은 알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스스로를 방관자라 부른다.
관여하자니 감정이 소모되고, 깊게 알기엔 자신이 없고,
‘미움받을 용기’가 부족하다는 걸 안다.
요즘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우리는 모두 크고 작은 ‘재판관’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
수많은 정보 속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때로는 확신하지만 사실은 착각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방관자에 머물러 있는 것인지도.
어쩌면 그게 나만의 균형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