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성으로 살아가는 용기
p167에 보면 [깨진 조각의 멋]이라는 소제목의 이야기가 있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흐리고 해진 것들 사이를 流浪유랑하다 보면 작고 빛나는 것이 눈에 띄었고, 쓸모없음의 쓸모가 떠올랐다. 裸木나목이 입고 있는 누더기, 누군가 색깔을 칠해둔 깨진 시멘트 바닥, 정성껏 휘갈겨 쓴 낙서들. 전부의 시선이 쏠린 觀光관광과 博物박물의 뒷모습에서 만난 조각들은, 미완성인 채로 완성인 아름다움이었다.”
이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마치 나의 삶을 이야기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완전하지 않다.
늘 삐걱거리고, 어딘가 구멍 나 있고, 때로는 스스로 쓸모없다고 느끼기도 한다.
누군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날,
하루를 제대로 살지 못했다고 느낀 날,
엄마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흔들릴 때
나는 늘 같은 질문을 떠올린다.
“어떻게 하면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오늘이라는 하루를 덜 허무하게 보낼 수 있을까?”
그런데 이 문장을 읽고 난 뒤, 완벽하지 않은 내 삶 자체가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있고, 또 상처받을까 조심하며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열심히 버티고 있는 나에게 ‘깨진 조각의 멋’을 조금은 허락해보려 한다.
문장에서 말하는 ‘나목이 입고 있는 누더기’, ‘깨진 시멘트 바닥’, ‘휘갈겨 쓴 낙서’는 어쩌면 지금의 나와도 닮아 있다.
온전하지 못한 모습.
누군가에겐 볼품없어 보일 수도 있는 부분.
완벽함과는 거리가 먼 흔적들.
하지만 그 조각들이 모여 나만의 결을 이루고,
그 결이 나를 만들어 간다.
나는 오래전부터 완벽하길 바랐다.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고, 후회 없는 선택만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바람은 오히려 나를 더 몰아붙였고,
내 안의 허전함과 불안을 더 크게 만들었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본다.
삶은 원래 미완성이고, 우리는 늘 그 미완성의 조각을 들고 살아간다.
그 조각들이 때로는 찢어져 있고, 거칠고, 무늬가 불규칙하더라도
그 자체로 ‘나’라는 모습을 만든다는 것을.
*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결국 사람으로 치유되었다
나는 인간관계가 특히 서툴렀다.
어릴 적부터 누군가에게 상처받을까 노심초사했고,
성인이 되어서도 관계는 늘 어렵고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서웠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사람 때문에 치유되는 경험’을 했다.
어떤 말 한마디, 어떤 배려, 어떤 위로 덕분에
조금씩 마음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들을 겪기 시작했다.
그 순간을 마주하며 느꼈다.
내가 그동안 쌓아 온 서툰 인간관계조차
나만의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얼핏 보면 모난 조각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그 조각들이 서로 맞물려
나를 더 온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엄마로서 완벽하지 않고,
한 인간으로서도 불안정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은
어쩌면 가장 큰 감사일지도 모른다.
이 문장은 나에게 여유를 보여주었다.
여유가 있어야만 비로소 빈틈이 보이고,
그 빈틈에서만 깨진 조각의 멋이 드러난다.
흠 없이 반듯한 삶이 아니라,
조금은 삐뚤고 비어 있는, 그래서 빛이 스며드는 삶.
“그럴 수 있지.”
별것 아닌 말 같지만, 실은 대단한 힘을 가진 말이다.
완벽하지 않은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