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졌던 마음을 채우는 나만의 방식
나는 지금도 공부를 하려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결국 내 안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서다.
학창 시절, 나는 공부를 하지 않았다.
중학교 때는 학원을 왜 다녀야 하는지도 몰랐다.
학원을 다녀도 성적은 오르지 않았고, 이해도 안 되고, 틀리면 맞고…
왜 맞았는지도 몰랐다. 선생님이 때린다고 부모님께 말해도 소용없었다.
나는 그 학원에 계속 다녀야 했고, 그 선생님은 “내가 언제 그랬냐”며
끝내 나를 구석에 두고 가르치지도 않았다.
나는 부모의 보호도, 가이드도 없이 혼자 버텨야 했다.
그때부터 ‘학원’이라는 단어 자체가 싫어졌다.
좋은 선생님을 기대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 중국으로 떠나면서 학업은 잠시 멈춰졌다.
부모님도 학업에는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생존 중국어 배우기만 급급했고, 나는 배워야 할 과목들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자라났다.
대학교에서도 전공과목을 따라가는 게 벅찼다.
이해되지 않는 게 많았고, 도움을 주는 사람도 없었다.
“왜 못하냐, 왜 못 따라가냐, 이런 식으로 할 거냐”
비난만 들었다.
자존감도 바닥이었고, 미래에 대한 기대도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졸업은 했지만, 동시에 결혼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때부터 마음속에 작은 불씨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배움’의 싹이 조용히 움트고 있었다.
공허하게 뚫려있던 마음을 채우고 싶었다.
똑똑하지 못하고, 이해가 느린 나를 다시 세우고 싶었다.
아이를 낳고 그림책을 들여놓으며 읽어주기를 반복했다.
내 책 읽기는 아이를 낳으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그림책만으로는 내 마음의 빈 곳을 채우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자 드디어 내 시간이 생기기 시작했고,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으려고 닥치는 대로 배우며 스스로를 닦달했다.
2023년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시사회에 당첨되어 영화를 보러 갔다.
그 시간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고 있었구나…” 깨달았던 시간이었다.
슬퍼서도, 기뻐서도 아닌 눈물이 흘렀다.
SNS의 세계는 너무 거대하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를 것들 속에서
나는 늘 어떤 갈망의 원인을 SNS에서 찾으려 했다.
그런데 영화가 말해줬다.
갈망을 해결하고 싶다면 SNS를 끊어야 한다는 것.
영화를 본 후 깨달았다.
한 지인이 나에게 말했다.
“네 삶은 참 재미있어. 하루도 그냥 넘어가는 날이 없잖아.”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내 삶은 계획대로 안 움직이면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 속에서도 나는 재미있게 살고 있었다.
아이들이 나에게 성장할 기회를 준다.
첫째는 친구 관계나 작은 사회생활에서 겪는 문제에 대해
지혜로운 답을 요구한다.
나는 또 골머리를 앓으며 답을 찾는다.
둘째는 호기심이 많아서 작은 집에 화분이 넘쳐난다.
모두 둘째의 작품이다.
다음엔 또 무엇을 가져올까?
다음엔 또 어떤 지혜로운 대답을 해줘야 할까?
생각해 보면
내 삶은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삶이다.
나는 왜 화재 사건을 겪었을까?
나는 건강 염려증을 언제 내려놓을 수 있을까?
나는 언제 평범하게 살 수 있을까?
책을 읽는 건, 나의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하고, 글로도 쓰고 싶어서다.
하지만 습관이 안 되어 있어서, 지금도 책 읽기는 어려운 과제다.
삶은 결국 ‘왜?’라는 질문으로 시작되는 것 같다.
항상 전날 밤에 다음날의 계획을 세우고 아침을 맞이한다.
물론 예상과 다르게 움직이는 아이들과 남편 때문에
마음속이 부글부글 끓을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복작복작한 아침을 맞이한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 아닐까 싶다.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우리 가정을
나는 참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