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살아가는 여정에서
p134 [한자줍기]
“살아내는 날이 쌓여갈수록,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상황을 힘들어하는지 좀 더 선명히 알아 간다.
그렇다고 해서 싫어하는 걸 항상 피할 수 있지는 않다.
당면한 지금 내가 왜 불편하고 괴로운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을 뿐이다.
사람들과 무리 지어 어울리는 것이 힘겹다.
자발적으로 참석한 것이 아니거나, 어렵고 낯선 이들로 가득한 어떤 시끌벅적한 식사 자리에 다녀오면 며칠을 앓아눕곤 한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도 번번이, 아주 작은 일들에까지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그래서 내가 내뱉었던 말이나 취했던 행동, 나아가 떠올렸던 생각까지도, 다시 꺼내어 반복 재생시키며 곱씹어본다.
타인에게 들었던 말과 당했던 행동보다도 주로 나의 언행을 위주로 되뇌기에, 밤이 되면 머리를 싸매고 이불을 걷어차게 되는 것이다.”
이 문장은 공감을 넘어서 내 이야기를 써놓은 듯했다.
언제나 복작복작한 사람들 사이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을 곱씹으며 머리를 쥐어박을 때가 많았다.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말했을까? 내가 입이 터졌구나, 내가 돌았구나.”
스스로를 향한 자책이 꼬리를 물었다.
몇 년 전, 오랜만에 만난 사람이 인사를 건넸다.
나는 기억이 나지 않아, 어색하게 “아, 예, 안녕하세요.” 하며 얼버무렸다.
그 후 그분이 다른 지인에게,
“인사했는데 표정이 별로였어요. 저를 싫어하는 것 같았어요.”라고 했다고 들었다.
그때 그 지인이 “아니에요, 원래 엄청 소극적인 사람이에요. 전혀 그런 사람 아니에요.”
라며 나를 대신 변명해 주었다. 그 한마디가 참 고마웠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게 나의 성향이라는 걸,
그리고 그걸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도.
초등학생 때 나는 오히려 활발한 아이였다.
3학년이 되자 부회장을 맡았고, 친구들에게 표를 부탁하며 앞에 나서기도 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었던 나는 4학년쯤엔 아이들 투표로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6학년 때 학원에서 왕따를 당했고, 그 일을 어른들에게 솔직히 알리며 스스로 해결했다.
그때의 나는 의외로 단단했고, 담담했다.
등굣길엔 부끄러움이 많아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실내화 가방을 꼭 끼고 구석진 길로 걸어 다녔다.
나는 활발하면서도 내향적인, 두 얼굴의 아이였다.
지금도 그 이중적인 면은 여전하다.
살다 보니 남을 쉽게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일찍 배웠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배웠지만
정작 내가 만난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여겼다.
어릴 적엔 “나 같은 사람만 있어도 세상은 참 편할 텐데.”
이런 생각을 자주 했다.
이렇게 다양한 나의 모습을 알아가며 살아왔지만,
여전히 나는 나를 다 알지 못한다.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인지 여전히 찾아가는 중이다.
서른이 넘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는 이중적인 면을 많이 가진 사람이라는 것.
아이들에게는 “실패해도 괜찮아. 다시 일어나면 돼.”라고 말하면서
정작 나 자신에게는 그 말을 건네지 못한다.
요즘은 새로운 도전이 두렵다.
한 번 실패했기 때문인지, 어차피 안 될 거라는 생각 때문인지,
포기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럼에도 내 안엔 늘 새로운 걸 배우고 싶은 갈망이 있다.
무엇을 배우고 싶은 걸까.
왜 그렇게 배우고 싶을까.
‘갈망’은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간절한 마음이라는데,
혹시 나는 방향 없는 갈망 속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도전을 앞두고 망설이는 건 아닐까.
그러다 문득, 내가 배우러 간 곳에서 마주한 사람들을 떠올린다.
나보다 훨씬 연배가 높은 50대, 60대 분들이
자녀를 다 키우고, 일을 마치고, 이제야
오랫동안 마음속에 묻어둔 배움의 꿈을 꺼내 든다.
그분들은 그 배움의 시간을 얼마나 기다리셨을까.
다사다난한 삶 속에서도,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해 온 ‘나만의 갈망’을
이제야 마주하는 그 순간이 얼마나 빛날까.
그분들을 보며 나는 배운다.
배움에는 늦은 나이가 없다는 것을.
꿈이 있다면 끝까지 나아가도 된다는 것을.
그분들을 통해 나는 위로받고, 다시 용기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