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통제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양육자의 시선
첫째가 어릴 때 중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몇 년을 졸랐다.
가르쳐보려 시도했지만, 매번 포기하곤 했다.
그땐 가르칠 에너지도, 노하우도 없었다.
하지만 배우고 싶어 하는 아이를 계속 미룰 수는 없었다.
결국 학교 방과 후 한자 수업을 신청했다.
처음엔 배우기 싫다고 했지만, “중국어를 하려면 한자를 알아야 해” 하고 꼬드겼다.
결국 8살 겨울, 한 달 정도 배우기 시작했고, 2학년이 되어서는 꾸준히 다녔다.
놀랍게도 아이는 생각보다 재미있어했다.
선생님은 할아버지셨고, 늘 생활 한복을 입고 오셨다.
공개수업 날, 실제로 뵈었을 때 마음이 묘하게 동했다.
‘하늘 천 따지’ 노래가 어색하지 않을 교실 풍경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런 선생님께 배우는 아이가 부러울 정도였다.
첫째는 수학을 어려워했지만, 국어는 늘 잘했다.
나는 점수로 아이를 평가하지 않는다.
공부를 방임하지는 않지만, 억지로 시키지도 않는다.
책 읽기 정도만 꾸준히 하게 하고, 문제집이나 교구는 몇 번 시도하다가 포기했다.
그런데도 국어를 따라가는 걸 보면, 아마 한자를 배운 덕분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이 인성 교육도 잘해주셔서 첫째에게 꼭 맞는 배움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사정으로 한자 수업이 없어졌다.
준 5급까지 따고 그만두었지만, 나는 아이에게 계속 배우라 강요하지 않았다.
‘스스로 배우면 좋겠지만, 이건 내 욕심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부모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우리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아이에게 투영한다.
그러나 내게 삶이 있듯, 아이에게도 그 아이의 삶이 있다.
부모로서 방향을 제시할 수는 있어도, 대신 살아줄 순 없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새로운 걸 시작할 땐, 최소한 석 달은 해보고 그만둬.”
끈기라는 건 그렇게 몸에 익히는 거라고 믿는다.
양육은 정답이 없는 문제를 매일 푸는 숙제 같다.
세상엔 육아서가 많지만, 내 아이의 기질에 꼭 맞는 해답은 없다.
결국 내 아이는 내가 연구하고, 매일 새로 배워야 하는 평생의 과제다.
요즘은 어휘력이 부족한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이 어휘력 때문에 뒤처질 거란 불안은 없다.
첫째는 배웠던 한자를 거의 잊었고, 둘째는 배운 적도 없지만
둘 다 국어 시험을 무난히 본다.
아마 책 덕분일 것이다.
사실 나도 책을 잘 읽는 편은 아니다.
그래도 읽으려 노력한다.
책을 읽을 때면, 내 뇌가 움직이는 게 느껴진다.
숏츠만 보면 뇌가 굳어가는 느낌인데, 책을 읽는 뇌는 굳은 근육이 서서히 풀리는 느낌이다.
첫째가 어릴 때 책을 좋아하길 바라며 전집을 여러 세트 사주었다.
아기니까 그땐 내가 읽어주는 걸 좋아했지만, 한글을 알면서는 스스로 읽는 건 싫어했다.
그래도 강요하지 않았다.
‘책을 싫어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보다, ‘싫지 않게 두자’는 마음이 더 컸다.
시간이 지나 어느 날,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는 마음으로 들여놓은 책들이
몇 년간 먼지만 쌓이다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점차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된 것이다.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
책을 읽어야 어휘력이 생긴다는 말,
아이를 키우며 그 말이 얼마나 맞는지 실감한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시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책을 읽기를 바란다.
책으로 세상을 배우고, 지식을 쌓으며, 조금씩 단단해지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