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시간과 나의 시간
아침에 눈을 뜨고 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내 삶은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다. 고난도 제자리인 듯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래도 나는 동기부여가 되는 영상을 보고, 일부러 생각을 바꾸며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 애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오늘 하루일 수도, 앞으로의 몇십 년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 살아가려 한다.
때로는 무기력함과 우울감이 찾아와, 모든 걸 멈추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땐 일부러 게으름을 허락하고, 뇌를 비우듯 아무 생각 없이 보낼 때도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땐 늘 아이들의 시간대에 맞춰 살아야 했다.
아이가 일어나기 전에 서둘러 밥을 먹고, 재우고,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놀아주기를 반복했다.
그런 일상도 나쁘지 않았지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 속에 갇혀 있는 듯 느껴졌다.
왜 그땐 그렇게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했을까.
생각해 보면, 나는 늘 ‘빨리빨리’ 돌아가는 세상의 속도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제 속도대로, 자연 속에서 자신만의 리듬 안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 속도에 나를 맞추다 보니, 익숙했던 시간의 흐름이 낯설 만큼 느리게 느껴졌다.
사실 느려진 건 시간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시계의 톱니바퀴가 처음 맞물리며 돌아가던 순간, 우리가 서로의 속도를 조심스레 맞춰가는 법을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받지 못한 것을 아이들에게 주고 싶었다.
하지만 받아본 적이 없기에, 주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고 버거웠다.
포기하고 싶다가도 ‘내가 무너지면 아이의 마음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생길까’ 두려워 다시 일어섰다.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주는 일은 결코 사탕처럼 달콤하지 않았다.
나의 어린 시절은 불우하지 않았지만, 부모님은 내 성향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그저 방임으로 키우셨다.
첫 아이를 낳고 나서야 부모님을 많이 원망했다.
용서가 되지 않아 괴로웠고, 다투기도 많이 다퉜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이제는 내가 더 이상 부모님께 사랑을 구하는 아이가 아니라, 부모님의 마음을 들어주고 버팀목이 되어야 하는 사람이라는 걸.
그 깨달음 이후로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때 그렇게 길고 버거웠던 시간은 어느새 지나가 버렸고, 아이들은 자라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많아졌다.
이제는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학교와 학원에서의 시간이 늘었다.
집에서 함께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그럴수록 하루하루가 더 소중해진다.
머지않은 미래에 아이들이 나로부터 독립해 각자의 삶을 살아가겠지.
그때 오늘의 이 시간이, 아이들에게 따뜻한 추억이자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길 바란다.
나는 100점짜리 엄마는 아니지만, 100점처럼 노력했던 엄마로 기억되길 바란다.
그리고 꼭 알아줬으면 한다.
나는 너희를 낳은 걸 한 번도 후회한 적 없고, 너희를 키우며 진심으로 행복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