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이 기적임을
교과서에서 활자로만 발음해 보던 어떤 세계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재의 공간임을 온몸의 전율로 실감하는 건 황홀한 일이었다. 되돌아올 수 없을 순간의 느낌을 기록하고 싶다는 욕구가 솟았다. p70 『한자 줍기』 – 최다정 산문집
들어만 보았던 혹은 사진으로만 봤던 세계를 직접 마주하게 되면, 그 황홀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벅차다는 걸 나도 느껴본 적이 있다.
태어나 처음 뚜렷한 달무리를 보았던 건 20년 전쯤이다.
중국에서 잠시 살고 있을 때였다.
밤이 되면 외로워서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그날도 학원을 다녀온 저녁이었다.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달빛은 유난히 밝았다.
달무리가 너무 예쁘고 영롱해서 한참을 가만히 서서 바라보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자연을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하늘과 나무를 바라보고, 바람을 느끼며, 그 순간의 공기를 맡은 건 순전히 외로움에서 비롯되었다.
아침에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눈을 뜨는 날,
파스텔 물감으로 칠한 듯한 노을을 볼 때,
푸른 하늘과 초록이 어우러진 풍경 속에 서 있을 때면 마음이 고요해졌다.
형형색색의 자연이 나를 위로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바라보는 이 풍경들이 오래도록 그대로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곧 사라져 버릴 순간의 슬픔, 혹은 기쁨에 압도당하는 때가 있다. 일정이 촉박한 짧은 여행에서는 언제나 시간의 속성으로 인한 극단적 감정을 선명하게 느꼈다.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놀던 표정이 해맑았던 건, 흘러갈 시간의 끝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 놓여 있는 장면에 다시 놓일 수 없다는 생각은 아주 빠르게 기어코 슬픈 감각을 불러내고야 만다. p95 『한자 줍기』 – 최다정 산문집
17개월 차이 나는 남매를 키우는 일은 나에게 너무 벅찼다.
양가 부모님의 도움 없이 혼자 해내야 했기에 매일이 버거웠다.
남편도 함께했지만 바쁜 나날 속에서 여유롭진 못했다.
그 시절의 시간은 멈춰 있는 것 같았다.
하루하루가 너무 길고 지쳐서, 아이들이 빨리 크기만을 바랐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길 간절히 기다렸다.
그런데 정신 차리고 보니,
시간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 있었고 아이들은 어느새 훌쩍 자라 있었다.
내가 바라던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진’ 아이들은
결국 언젠가 내 곁을 떠나 독립을 준비하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작가가 말한 것처럼,
어린 시절 골목길에서 놀던 시간,
시골에서 돌멩이로 소꿉놀이하던 순간이 해맑았던 이유는
흘러갈 시간의 끝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마음속에 어린아이를 품은 채 어른이 된 나는
이제는 시간의 끝을 늘 염두에 두며 산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매 순간이
언젠가 끝날 것을 알기에, 그 끝에 슬픈 감각이 올지라도
지금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아침에 인사하고 나가서 무사히 돌아오는 일이 기적임을,
매일이 기적 같음을 기억하며,
나는 어제보다 오늘 더 사랑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