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나의 본성本性

성공한 엄마보다 함께 있어주는 엄마 되기

by 자청비

- 본성 本性

네이버 사전에서는 [1. 사람이 본디부터 가진 성질, 2. 사물이나 현상에 본디부터 있는 고유한 특성]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태어나면서 갖춘 마음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나는 밖에 나가 떠돌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곳을 좋아했다.

집에 혼자 있는 걸 극도로 싫어했으며, 그 시간은 나에게 외로움이었다.

무엇보다 얽매이는 걸 싫어했다.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말을 듣는 걸 좋아했고,

즉흥적으로 살았다. 배우고 싶으면 배우고, 도전하고 싶으면 도전했다.

그런데 자유의 반대편엔 늘 불안한 내가 있었다.


출산과 육아라는 산을 넘으며 나는 완벽주의 계획주의자로 변했다.

어쩌면 내가 가지고 있던 기질이 출산과 육아라는 새로운 상황에 나타났는지도 모른다.

아이를 돌보는 일 앞에서는 다시 즉흥적인 사람이 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본성은, 여전히 자유를 향해 있었다.


어릴 적 나는 군대를 유난히 싫어했다.

친구들이 군에 가고, 남자친구마저 입대했을 때

정해진 규칙과 절대복종의 세계를 보면 반발심이 치밀었다.

그런데 내가 아이를 양육하며 군대처럼 아이들을 통제하려는 모습을 깨닫고

우리 집만의 규칙을 세우되 통제하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다.


3년 가까이 번역 공부에 매진했었다.

영상, 출판, 게임 번역 등 다양한 분야를 배웠다.

하지만 배울수록 ‘번역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배우는 걸 좋아하는 나’라는 걸 깨달았다.

번역 강의의 실체를 알게 되며 마음은 점점 멀어졌고,

실력은 제자리에서 맴돌았다.


아이들을 돌보며 공부하는 건 쉽지 않았다.

핑계일지도 모른다. 더 노력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번 퇴출당하고, 번번이 부족함을 느끼며 결국 번역을 내려놓았다.

3년간 쏟은 시간과 돈이 아까웠고, 실패한 기분에 무너졌다.

우울한 나를 끌어낸 건,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내가 번역을 잘하든 못하든, 성공을 했던 실패를 했던 상관없었다.

그저 아이들 옆에 내가 존재하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성공한 엄마’가 아니라, ‘함께 있는 엄마’였다.


어디선가 들었다.

양육이란, 아이가 독립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고.

아이들은 매 순간 나로부터 독립을 배우고 있었다.


아이들 덕분에 나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가는 일이 잦아지고, 그 행동들이 점점 나를 살렸다.

햇빛을 보고, 바람을 느끼고, 세상과 연결되며

나는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다.


아직도 내 길을 몰라 헤매지만,

오늘도 눈을 떴고, 살아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살아내고 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