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줍기, 최다정 산문집을 읽고-
한자 줍기 – 최다정 산문집을 읽었다.
한자를 배우기보단 한자에 들어간 뜻과 삶의 이야기여서 어렵지 않게 읽혔다.
아주 어릴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다.
한자 시험을 잘 봐 상장을 받았고, 그때부터 ‘나는 한자를 잘한다’는 믿음이 생겼다. 주변의 칭찬이 나를 더 한자에 끌리게 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중국어를 배우며 다시 한자를 접했지만, 한자는 여전히 어린 시절의 ‘좋아했었던 것’으로 남았다.
가끔 생각한다. 그때 부모님이 나에게 한자를 더 가르쳐주셨다면, 지금의 나는 조금 달랐을까?
여기가 자주 싫어지고, 싫어졌던 횟수와 크기에 맞먹을 만큼 또 어떤 때는 여기에서 사는 것이 사무치게 좋기도 하다. 도망쳐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단 사실이 무색하게 나라는 사람, 둘러싼 사람들, 벌어지는 상황들이 모두 다 애틋해지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p39 [한자 줍기-최다정 산문집]
이 문장이 내 마음을 두드린 이유는 22년도의 일 때문이다. 2022년도 겨울은 무척 길었다.
끝없는 어둠을 달리는 듯한 기분으로 살아냈다. 살아 있기에 숨을 쉬는 게 아니라, 숨을 쉬고 있어서 살아내는 시간이었다. 어떻게 보면 ‘별것’ 아닌 일, 어떻게 보면 아무렇지 않을 일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별일’이 아닌 그날의 ‘두려운 사건’으로 각인되었다.
솔직히 나는 아무런 타박상도 입지 않았고, 정말 불길 속에서 뛰쳐나온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멀쩡하게 스스로 도망쳐 나왔다. 아무렇지 않게 빠져나왔지만, 몸속은 곪을 대로 곪아 터졌다. 시간이 거듭될수록 내 몸은 망가져 갔다.
집안 내력도 아닌 작은 탈모가 생기기도 했고, 생전 안 나던 코피가 일주일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났다. 구내염도 없던 내가 한 달 내내 구내염을 달고 살았고, 늘 정확하던 생리도 불규칙해졌다. 심신이 지쳐 졸린데도 쉽게 잠들지 못했고, 어렵게 잠들면 반사적으로 자꾸 깨어났다. 이 모든 것은 스트레스로 인한 증상이었다.
집이 복구되기 전까지는 밖에서 생활했다. 감사하게도 주변에서 많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었다. 어느 정도 복구가 된 집으로 돌아오자 주변에서 먹거리를 가져다주기도 했고, 나의 심신을 살펴봐 주었다. 그래서 나도 마음과 몸을 정리하고자 먼저 짐이 쌓여 있던 부엌을 정리했다. 고상한 취미가 생겼다는 핑계로 찻잔을 사고, 차를 마신다는 핑계로 정리를 했다. 정리부터가 내 마음을 정돈한다는 어느 글을 봤던 탓일까.
천천히 집안 구조를 바꾸며, 쌓여 두고 버리지 못하던 물건들을 차곡차곡 버렸다. 몇 년을 어둡게만 지내던 거실 커튼을 쳤다. 햇빛이 들어오고 집이 밝아졌다. 그로 인해 내 마음도 한층 밝아졌다.
‘불 난 집에서 어떻게 살아?’
‘그냥 살아지던데.’
‘한 번 불나면 집 내부 구조가 많이 망가진다던데.’
‘괜찮아, 우리 집이 불에 탄 건 아니라서.’
사람들은 물어본다. 가볍게. 나도 가볍게 답한다.
도망치고 싶었고, 살고 싶지 않았는데 반대로 여기만큼 좋은 데 없고, 여기만큼 편한 데 없었다. 심지어 돈도 없기에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다. 코피가 나고, 잠을 못 자도 그러려니 했다. 입안이 자꾸 구멍이 나고 아파도 계속 먹었다. 긴 겨울만큼 쌓였던 뱃살을 빼려고 운동도 시작했다.
그때는 그렇게 살려고 발버둥을 쳤다. 스트레스가 극도로 쌓이면 뇌에서 어떤 신호가 온다. 나는 그 지경까지 겪어 봤고, 내가 스트레스에 엄청 취약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회복되기까지는 1년이 걸렸다.
불길은 사라졌지만, 그날의 흔적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그러나 그 흔적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다.
커튼을 걷고 햇빛이 들어오던 그날처럼, 마음에도 조금씩 빛이 스며들었다.
최다정 작가가 한자 속에서 삶의 이야기를 주웠듯,
나도 그 겨울의 잿더미 속에서 내 삶의 글자 하나를 주워 들었다.
삶은 때로 타오르고, 때로 남은 재 위에서 다시 써 내려간다.
한자 한 획처럼, 나는 오늘도 천천히 나를 읽고, 나를 다시 써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