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나는 할머니다
우리 집 정원에( 화분 몇 개 남아있는 아파트베란다를 나는 정원이라고 부름) 빨갛고 작은 꽃이 피었다.
"꽃이 피었구나" 나는 핀 꽃에게 말을 건다.
곧이어 "물을 주어야겠네" 혼잣말을 하는 나는, 영락없는 할머니다.
"우리 집 정원에 꽃이 피었는데 구경 오세요" 남편까지 불러다 구경을 시키는 나는, 영락없는 푼수 떼기다.
정원을 한 바퀴 돌아본 다음 나는 노트북 앞에 앉는다.
검색도 하고 쇼핑도 하고 브런치스토리에 몇 자 끄적이기도 한다.
한참 후, 갤럭시 워치에서 이제는 움직일 시간이라는 알람이 온다. 말 잘 듣는 나는 벌떡 일어나 집안을 한 바퀴 돌아보고 냉장고도 열어보곤 한다. 곧이어 참 잘했어요 하는 알람이 또 온다.
내입에선 저절로 "알려줘서 고마워요"가 나온다. 나는 워치 하고도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영락없는 푼수 떼기 할머니인 것이다.
그래도,
그래서 좋은 것은 그 순간 안개처럼 내려있던 우울과 권태가 조금씩 날아가지 때문이다.
딱이 계획된 할 일이 없는 날에는 자주 느끼는 일상의 지루함, 권태로움 끝엔 늘 우울감이 따라온다.
단조로움과 반복을 싫어하는 나의 성격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평범한 일상을 견디기가 몹시도 힘이 든다.
내 앞에 놓인 많은 시간들, 노년의 시간을 어찌할 것인가? 어떻게 보낼 것인가?
외출 없는 오늘은 그림을 그려볼까? 오후엔 맛있는 막걸리안주를 만들어볼까? 궁리를 해본다.
영락없는 푼수 떼기 할머니가 될지라도 나에게 주어진 날들을 소중하게 귀하게 보내고자 노력한다.
오늘의 드로잉
잘해서가 아니라
오늘도 해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