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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호 Jun 28. 2024

06.28

그냥 일기

일기 하나 남기기도 힘들 줄은 몰랐다. 그렇게 바쁘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그렇지만 할 일이 많다는 건 사실이다. 매일 연습이니 지쳐간다. 몸은 힘든데 잠들 때가 되면 자꾸 이상한 욕망이 솟아난다. 이대로 자긴 아까운데..


그렇다고 할 건 없고 안 자면 피곤하고. 휴대폰을 만지는 건 끓는 물에 담긴 개구리 같고


연습이 일찍 끝난 날이 있었다. 2일 전인가. 시간 감각도 사라졌다. 어쨌든 혜화에 <햄릿>을 보러 갔다. 3일 전이구나 그럼. 어쨌든 혜화에 햄릿은 상업극과 정극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한 듯했다. 화려한 라인업으로 사람들을 붙잡아두고 대극장이라는 무대와 2층 객석, 비싼 티켓 값 


문제는 2층까진 배우들의 연기가 전해지질 않았다. 지극히 내 개인적인 소견이다. 만약 돈 주고 볼 거라면 어떻게든 1층을 가길. 거긴 다르겠지. 2층에서 기립 박수 치는 사람은 딱 한 명 보았다. 물론 내가 뒤돌아 보질 않아서 더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앞만 봤으니까.


공연까지 시간이 살짝 남아서 위트 앤 시니컬에 갔다. 유희경 시인의 서점으로 익히 알고 있던 곳이기도 했던 시집 전문 서점이다. 계속 미루다 드디어 갔는데 1층엔 무슨 다른 서점이 있었다. 그 서점을 통해 2층으로 올라오면 위트 앤 시니컬이 나온다. 흰 머리의 남성이 보였고 직감적으로 유희경 시인이 아닐까 싶었다. 인사하자


어, 안녕.


답이 돌아왔다. 살짝 당황했다. 친근한 시인이었구나. 곧 돌아오는 물음.


수업 들으러 왔니?


아, 다른 사람과 나를 착각했구나. 아니라고 대답하자 별 반응 없었던 거 같다. 책을 한 권 꺼내서 읽는데 곧 사람들이 올라왔다. 아, 수업 같은 걸 하는구나. 곧 시작할 시간인가 보았다. 아마 7시 쯤 되었을 거 같다.


책의 일부분을 읽다 인사하고 내려갔다. 그러자


안녕히 가세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역시 착각한 거였구나.


근데 그런 친밀감이 난 싫지 않았다. 오히려 잊고 있었던 친숙함을 느꼈달까. 인간미가 느껴졌다. 그냥, 그랬다고. 인스타로 종종 위트 앤 시니컬을 염탐하곤 하는데

나도 은퇴 후엔 저런 서점이나 북카페를 운영하고 싶다.


어젠 미팅을 보고 왔다. 회사를 밝혀도 될까. 유명한 곳이었다. 전화로 나눴을 땐 편하게 오라고 했고 미팅이라고 했다. 하지만 사실상 면접 분위기였다랄까. 7명 정도 되는 인원이 면접관처럼 일렬로 있었으니까. 앞선 면접자(?)는 나에게 혼자냐고 물었다. 이게 무슨 범죄도시 같은 대사일까 했는데


저희는 두 명씩 봤거든요.


아, 그렇다면 2명씩 면접 보는 거였구나. 내가 늦은 탓에 이렇게 된 건가 싶었다. 7시 미팅이었는데 나는 6시에 연습이 끝났다. 끝나자마자 바로 역으로 뛰어서 열차도 탔지만 시간은 부족했다. 6시 출발과 동시에 문자로 늦을 것 같다고 보냈지만 시작부터 난 마이너스였을 거다.


사실, 붙든 안 붙든 그건 중요하지 않은 건데 그냥 재밌었던 경험이다. 뭔가 개그맨 시험 보면 이런 기분일까 싶기도 했다. 참고로 작가 미팅이다. 근데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개그(?)와 관련된 방송을 만드는 쪽이어서다.


재밌는 얘기가 있냐는 뉘앙스의 질문이 왔을 때, 머릿 속에 시뮬레이션 돌렸던 이야기를 보여줄까 말까 고민했다. 보여줄 거면 확실하게 해야 하는데 내가 너무 어정쩡한 스탠스를 유지했다. 그래도 마지막엔 웃겨서 다행이었다. 웃긴 게 왜 다행인진 모르겠다.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아마 붙는다면 그때 그 얘기를 더 자세히 쓸 테고

안 붙어도 써도 되나.


뭐 다음 주가 되면 어떤 식으로든 글이 써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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