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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호 Aug 30. 2024

에세이라니 일부

그냥..

작가 프로필     


김기범(金起範)

     

1999년 개천절에 태어나 지금까지 대타, 일용직 포함하면 크고 작은 알바가 손가락 다 세고 발가락을 이용해도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인생이 안녕하여 스무 살에 자립했고 알바만 하는 인생을 살 뻔했다. 나를 소중하게 대할 줄 모르고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지만 아무것도 실천하지 않는다. MBTI는 INFP인데 J가 0이 나왔다. 《와우산 등성이》의 공동 저자지만 정작 책을 소장하진 않고, 문예창작학과를 목표로 실기를 준비했지만 전부 떨어졌고, 학교에선 교감 선생님께 ‘백일장에서 상 못 받는 아이’로 찍혔다. 데드라인 없으면(있어도) 글을 잘 못 쓴다. 스무 살 때 몸에 새긴 타투를 아빤 아직 모른다. 인플루언서를 목표로 당근마켓 99.9℃를 찍고 싶었으나 83.7℃에서 더 오르지 않았다. 나는 문창과지만 딱히 책을 좋아하지도 않고 국문과가 아니기에 국어도 잘 못하는데 어쩌다 글을 쓰고 국어 과외와 국어 조교까지 하고 있다. 바람직하게 사는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모르겠지만, 남들의 충고는 듣고 싶지 않다. 굳이 충고하고 싶다면 ‘978-030299-01-012 기업은행 김기범’으로 입금 후 부탁한다.


인스타그램 @sooho28956     



작가의 말     


예전엔 안녕하지 못해 시를 쓴다고 적었는데 생각보다 안녕하다. 안녕, 안녕, 안녕 세 번을 외쳐도 생각보다 별 소용이 없다. 그러니 모두 행복하자. 행복하게 사는 게 최고니까. 공사장에 적힌 안전제일 펜스도 행복제일로 바꿔야 한다. 이게 뭔 개소리냐고 하면…… 아멘.

내 글을 읽었다면 유감임을 밝힌다. 안 읽었다면 다른 작가의 글을 먼저 읽기 바란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도는데 할 짓이 너무 없을 때, 넷플릭스에서 볼 영상이 없어 유튜브 들어갔더니 알고리즘이 마땅한 영상을 추천하지 못하는데 뭐라도 해서 시간을 축내고 싶을 때, 그때 내 글을 읽어 주면 감사하겠다.

기왕 쓰는 김에 이근화 시인의 수필처럼 쓰고 싶었지만 역량이 부족했다. 이병일 시인처럼 시적인 문장과 톡톡 튀는 발상을 구사하고 싶었지만 그것도 어려웠다. 나희덕 시인처럼 올바른 인성을 갖추고 싶었지만 그건 더 어려웠다. 나희덕 시인은 친구들이 상처받을까 걱정되어 보육원 일은 시로 쓰지 않는다는데 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팔고 있으니까. 글 실력도 부족하거늘 인성까지 모자라 아무리 봐도 읽어 줄 가치가 없는 글을…… 읽어 줘서 감사하다.



수호라니     


중학교 땐 나이키 신발과 아디다스 저지를 갖고 싶었다. 성인이 되고 나이키 신발을 샀지만 기쁘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이유를 찾고 싶었지만 서울에선 숨만 쉬어도 돈이었다. 가만히 있을 여력이 없었다. 바쁨을 증빙하듯 에어가 있는 나이키 신발이 오래되어 어린이 신발처럼 삑 삑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에어가 빠지는 걸까. ‘just do it’을 상징하듯 쭉 뻗은 나이키 로고가 얼룩지다 못해 지워지고 있었다.


쓸모가 없어진 신발은 버리면 되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기처럼 삑 삑 소리 나는 운동화를 신고 다니기엔 쪽팔렸다. 뭐라고 형용할 수 없지만 내 신발이 노견 같았다. 몇 년을 신고 다닌 나 때문에 늙은 거니까 꼭 ‘수호’ 같았다.


‘수호’는 내가 처음으로 기른 개다. 아빠 친구는 개를 전문으로 키우는 사람이었고 그 집에 무단으로 침범해 잠을 자던 수호를 아빠가 데리고 왔다. 나는 줄곧 강아지를 키우자고 졸랐고 아빠는 그걸 기억했던 거다. 수호는 말티즈를 닮았는데 노안이었다. 그래서 노견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수호는 비가 오는 날이면 자신의 밥그릇에 몸을 웅크렸다. 사료가 담긴 밥그릇에 젖은 몸을 말아 넣었다. 사료는 눅눅해졌고 그러자 수호는 먹질 않았다. 바닥이 젖지 않게 장판을 깔아줘도 밥그릇에 들어갔다. 그냥 습관이었을지 모른다. 햇볕이 센 날엔 무소 차 아래에 몸을 숨겼다. 그럼 하얀 털이 시꺼메졌다. 아궁이에 불을 때고 남은 숯으로 고기를 구워 먹으면 수호는 애기 같은 울음소리로 마당을 채웠다. 그 소리를 모른 척할 수 없어 실수인 척 고기를 떨어뜨려서 수호에게 갖다주기도 했다. 그러면 수호는 두 발로 뛰어오르며 꼬리를 헬리콥터처럼 빠르게 흔들었다.


수호의 뜻은 지키다의 수호(守護)가 아니다. 짐승 수(獸)에 좋을 호(好)다. 아마 우리 가족 중에서도 나만 아는 사실일 거다. 수호는 2012년 6월 3일에 새끼 둘을 낳았고 호식이는 그해 겨울을 나질 못했다. 수호는 호돌이와 함께 다음 해 자기가 왔던 집으로 돌아갔다. 사실 시장에 갔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아빠는 수호와의 마지막을 얘기해줬다. 수호는 조수석에서 창밖을 바라보는데 하늘을 보고 있었다고.


당시 중학생인 나는 친구들에게 수호를 팔았다고 혹은 돌려보냈다고 말하기 애매했다. 몇 년이 지나자 그냥 죽었다고 얘기했다. 아마 이쯤이면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까 싶었다.


처음 수호가 왔을 땐 애지중지하겠다고 다짐했는데 오래가질 않았다. 초등학생이었던 내게 수호의 산책보다 런닝맨이 더 재밌었다. 하루가 지날수록 소중함에 익숙해지니 무뎌졌다. 그런 탓일까 수호 후로 강아지를 꾸준히 키웠지만 수호한테 줬던 정을 더는 줄 수 없게 됐다.


죽고 나서 후회하는 건 미련한 짓인데, 자꾸만 되풀이됐다. 친구 하루가 죽고 후회했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옛말을 믿지 않게 됐다. 하루 후로 괜히 한번 친했던 친구에게 연락을 돌리게 됐다. 요즘은 또 무덤덤하고 귀찮아졌다. 얼굴 한 번 봐야지 하다가 몇 년이 지나니 이제는 구실도 없어졌다. 이렇게 멀어진 인연을 생각하면 밤하늘 별 같아서 안타깝다. 보고 싶은데 서울엔 별이 없다.


아마 앞으로도 이별이 익숙해질 것 같진 않다. 조건 없이 나를 좋아해 줬던 건 수호랑 엄마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생각이 꼬리를 물기 전에 산책이나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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