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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토 Oct 02. 2022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1968)

인류 역사의 특이점 같은 영화


10주간의 SF 영화 리뷰를 시작하는 첫 작품으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야말로 가장 적합한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디 가서 SF 영화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게, 저는 사실 이 영화를 본 적이 없었어요.

영화 역사상 기념비적인 걸작이라고 불려왔지만 역시 고전이라고 하면 쉽게 손이 가지 않는게 사실입니다. 오래된 명작을 찾아 보기보다는 새로 쏟아져 나오는 자본 듬뿍 들어간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훨씬 익숙하고 접근하기 편하지요.


하지만 이제와서 이 영화를 보고 말하자면 단언컨대, 이 영화는 역사와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특이점 같은 작품입니다. 이미 개봉한 지 50년이 넘게 지났지만, 앞으로 50년 후에도, 100년 후에도, 마치 어제 나온 신작처럼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어요.  



모든 고전은 그 시대의 모습을 반영합니다. 그 안의 변하지 않는 보편성이 있기에 오랜 세월 읽히는 텍스트이지만, 수십 년, 수백 년이 지나 시대가 변화하면 와닿지 않는 괴리감은 커지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영회가 만들어진 시대의 특수성이 거의 희박하고 보편성을 가진 텍스트로서의 기능을 극대화한 작품입니다. 1968년에 상상한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이 정교한 미래에 대한 상상력뿐만 아니라, 영화의 전체적인 스토리가 단일한 구체적인 사건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 모든 인간의 삶 자체를 아우르는 이야기를 하고 있음이 한몫했겠지요.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자세하게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시대적인 한계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작품이었습니다.



영화의 화면은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로 표현할 수 있는 세련됨의 정점에 있는 듯 합니다. 우리가 컴퓨터 그래픽의 시대에 살면서, 얼마나 많은 '손맛의 아름다움'을 놓쳐 왔는가 돌아보게 되더군요. 우주와 행성들, 우주선 내부와 외부, 웜홀을 통과할 때의 신비로운 색채로 뿜어내는 추상 예술 같은 장면까지. 2020년대의 눈으로 보아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요즈음에는 우주를 그린 대형 SF 영화에서 느낄 수 없는 담백함이 장점으로 드러났습니다.



어찌 보면 지루할 수도 있겠다 싶어요. 이 영화는 쉬지 않고 빡빡하게 스토리를 채워가며 떡밥을 뿌리고 수거하는 형태의 영화가 아닙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우주가 나오는 영화에서 기대하는 시각적, 청각적인 어트랙션도 많이 부족하지요. 영화의 대부분의 장면은 정적인 우주를 배경으로 느린 등속 운동의 이미지가 많은 방식으로 변주됩니다.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던 영화의 중반부까지는 이건 혹시 영화의 탈을 쓴 ASMR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어요(ㅋㅋㅋㅋ) 자극적인 콘텐츠만 추구하다 보니까 담백한 맛이 익숙하지 않아서겠지요. 그러나 갈수록 느림이야말로 이 영화의 큰 매력이 아닌가 느꼈습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이후에 나온 너무 많은 작품에서 오마주했기 때문에, 보다 보면 익숙한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인터스텔라나 그래비티 뿐만아니라, 앞으로 다른 우주와 관련된 영화를 본다면 비슷한 것이 계속해서 보일 것 같아요. 그렇다고 이 영화가 '어디서 봤는데'의 총집합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클리셰 범벅의 뻔한 영화였겠지요. 이 영화에서 느껴지는 익숙함은 뻔한 클리셰가 아니라 21세기의 시각에서도 보기 편하게 만들어주는 쿠션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이 영화가 과거의 한 지점에 머물러있는 작품이 아니라 계속해서 재상산되는 현재적인 텍스트임을 보여주지요.


본격적으로 영화의 내용을 이야기하기 전에, 스포일러 없는 감상 포인 마지막으로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뇌를 비우고 편안한 마음으로 ASMR을 감상하듯이 보세요. 어느 순간 자극 쭉 뺀 심심한 맛에 길들여져 영화에 묘하게 빠져듭니다. 후반부가 되면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함이 몰아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영화가 끝나요. 이게 뭐지??? 싶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부여잡고 해석을 찾아 보세요. 전설과도 같은 작품이다 보니 좋은 해석과 평론이 넘쳐 납니다. 그리고 영화가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가 이해가 가기 시작하면, 이만한 명작이 없다고 느껴지실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스포일러 구간입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는 외계인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 '모노리스'라고 부르는 거대한 직육면체의 물체가 등장하는데요, 이것이 영화의 챕터를 나누는 책갈피 같기도합니다. 겉으로 보았을 때는 모노리스의 정체, 그것을 보낸 외계인의 정체를 찾아가는 여정 이야기가 아닐까 싶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것과는 거리가 멀지요.




영화가 시작하고 거의 30분간 아무런 대사도 나오지 않습니다. 인류가 아직 인간으로 진화하기 전 유인원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자연 속에서 살며 다른 유인원 무리와는 목소리의 크기로 싸우고 맹수의 공격에는 처참하게 당하던 유인원들이 어느 날 모노리스가 나타나고는 돔물의 뼈를 활용해 도구를 사용할 수있게 됩니다. 인류 역사의 한 챕터가 지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죠. 여기서 유인원이 던진 뼈가 수백만 년 후의 미래로 넘어가 우주선의 모습으로 바뀝니다.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매치컷이라고 하는데, 사실 이 장면의 편집이 이 영화의 유일한 흠이 아닐까 싶었어요. 뼈에서 우주선으로 넘어갈 때 모양이 겹치면서 자연스럽게 넘어갔으면 완벽했을 텐데, 둘의 애매하게 맞지 않는 위치가 거슬리는 느낌...(ㅋㅋㅋ)



인류가 달을 정복한 미래, 여기서 또다른 모노리스가 발견됩니다. 지하에서 발견된 모노리스는 목성으로부터 오는 신호를 받고 있지요. 인류의 다음 챕터가 넘어갑니다. 처음에는 도구를 사용하게 되었고, 이제는 더 넓은 우주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목성에서 오는 신호를 따라 인류는 목성을 향해 탐사선을 보냅니다. 세 번째 에피라고 볼 수 있는 목성 탐사선 에피에서는 우주선의 인공지능인 HAL 9000이 인간에 반기를 드는 사건이 생깁니다. 여차저차 신호를 보내는 다음 모노리스까지 발견하게 되고, 웜홀을 통과해 정체를 알 수 없는 방으로 가게 되는 것이 네 번째 챕터의 시작입니다.



모노리스를 보낸 외계인이 만든 것 같은 그 공간에서 주인공 홀로 늙어가고, 죽음의 순간에 마지막 모노리스가 등장하며 그는 어린아이의 형상으로 변해 다시 지구로 보내집니다.



결국 모노리스의 정체나, 외계인의 모습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모노리스가 등장할 때마다 넘어가는 챕터는 도구의 사용으로 자연을 정복하게 된 인간이 우주로 나가기 시작하고, 태양계를 벗어나 미지의 세계에 도달하게 되는 인류 발전사의 모습을 띠고 있으나, 마지막에 등장하는 웜홀 이후의 공간과 '스타차일드'라고 불리는 어린아이의 형상 엔딩은 도대체 무엇을 상징하는지 바로 와닿지 않지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영화 속 세계에서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이끄는 상위의 존재가 있다는 것입니다. 모노리스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인류의 역사는 떠밀려 가기만 하지요. 거기에서 주는 섬뜩한 느낌이 있습니다. 영화의 화면이 너무나도 정적이고 고요하기만 한 것도, 마치 초월자의 존재로 바라보는 우주 같아요. 반면에 인간이라는 개인은 한없이 작고 초라합니다.


엄청난 문명의 발전을 이루었지만, 자신들의 피조물인 인공지능 컴퓨터조차 통제하지 못하지요. 목성을 향해 가면서도 자신이 어떤 임무를 띠고 있는지 모르고, 컴퓨터의 반란에는 속수무책으로 승객들을 잃습니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공간마저 아무런 해답을 주지 못합니다. 그저 잘 차려진 방 안에서 고독하게 여생을 보내고 홀로 세상을 떠날 뿐이죠. 삶의 방향을, 역사의 방향을 이끄는 높은 차원의 존재에 대해 우리는 어떤 것도 알지 못한 채 그저 끌려가다가 생을 마감합니다.




마지막에 아이가 되어 다시 지구로 돌아오는 것은 이 이야기가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지구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모든 인간들의 이야기임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주 탐사 이야기로 보이지만 결국 정해진 궤도를 벗어날 수 없는 인간 삶의 본질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이 작품이 가지는 보편성이고, 시대를 막론하고 영원한 걸작으로 남을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네요.


이 영화가 니체의 사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해석을 보았는데, 개인적으로는 니체의 사상을 완전히 뒤집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말과는 달리 이 영화에 따르면 신은 존재하고, 인간은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능동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영화의 메인 테마곡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슈트라우스가 동명의 니체 저작에 영향을 받아 쓴 곡임을 생각하면 니체의 사상에 대한 은유이든 전복이든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글이 길어졌지만, 이 영화에 대해서 자잘한 부분까지 하나하나 얘기하려면 끝도 없을 것이라 생각해요. 두고두고 곱씹을 수 있는 작품을 한 번 보고 겉핥기만 한 상태에서 쓰는 리뷰 글이다 보니 많이 부족하기도 하고요.

SF야말로 철학적인 주제를 전달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장르라 생각하는데, SF의 표본이라고 불릴 만한 이 작품 역시 그러한 제 생각을 너무나 잘 뒷받침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철학적으로 생각해볼 거리가 있는 SF 영화 리뷰로 계속해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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