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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루 Jan 13. 2019

민트의 쓸모


텃밭 가득 허브가 자란다. 어릴 적 키운 유일한 허브였던 민트는 이후에도 내 뇌리에 박혀 허브라고 하면 으레 민트를 떠올릴 정도로 대체어가 되어버렸다. 이번에 작은 텃밭을 가꾸게 되면서 허브라는 작물을 심어보겠다고 정한 순간부터 민트는 언제나 1순위였다. 목적도 흥미도 없었지만 으레 당연한 그런 것.


몇 종 되지 않은 허브지만 거기에도 '당연히' 민트는 있었다. 

민트, 로즈마리, 딜, 고수, 이탈리안 파슬리. 총 다섯 종류의 허브를 심었는데 그 중에서도 민트는 뭐랄까. 내 입장에선 도통 쓸모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밭을 가도 좀처럼 수확하는 일이 없었고 이내 쿠바식 텃밭 상자 하나를 가득 덮을 정도가 되자 그제서야 이 '풀'의 쓸모에 대해서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처음은 모히또였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방법. 안그래도 많은 양의 민트를 단번에 많이 쓸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실제로 민트를 빻아 모히또를 만들어보니 내게 텃밭이 없었다면 절대 만들어 먹지 못했을거란 생각이 든 방법이기도 했다. 500밀리미터 정도의 모히또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민트가 들어가던지. 


두 줌의 민트, 레몬즙, 탄산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식사에 곁들여 먹을 거라 럼은 추가하지 않았고 라임도 일부러 구해야 하는 일이기에 생략. 레몬으로 대체했다. 정통 쿠바식은 아니라 야매 모히또 정도 되겠지만 그걸로도 충분하다 할만큼 훌륭한 맛. 


상큼하고 개운한 맛이 주꾸미 파스타에 잘 어울렸다.




두 줌의 민트를 빻고 나니 드는 생각은 돌연 민트가 아깝다는 거였다. 처리 불가라 곤란했던 기억은 어딜가고 잘 우려 먹은 민트를 버리며 다신 한 번에 이 많은 양을 쓰지 말자는 생각만 들었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은 더운 여름날. 시원한 물에 넣어 개운하게 마시는 일. 

그저 기분만 내는 것으로, 향기만 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파리 하나하나를 꼭꼭 씹어먹어야만 잘 먹는 건 아니니까. 열 개의 재료엔 저마다의 다른 열 개의 사용 방법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냥 시원한 물에 담가 마시고




붉은 과일의 장식용으로도 쓰는 것. 



그렇게 하나 둘 직접 다뤄보며 쓸모를 찾아가는 일.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여기게 되는 내가 있었다. 

거대하고 대단한 무언가를 하는 것만이 의미를 갖는 건 아니라도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가능하다면 그런 것들을 해야 좋은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늘 내 안에 있었던 것 같았다. 쉽진 않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도 아닌 것들. 


민트의 쓸모를 찾으며 배운 또 하나의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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