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읽고
10월 23일 현재 기준, 거대도시 뉴욕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양키스와 다저스의 월드시리즈이다. 두 팀이 워낙 빅마켓인 데다 애런 저지와 오타니 쇼헤이의 맞대결 등 볼거리가 풍부해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양키스를 포함해 메츠, 자이언츠, 제츠, 닉스, 네츠 등 내로라하는 뉴욕 소속 스포츠팀들의 관중을 모두 합친 것보다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의 방문객이 많다. 매년 거의 700만 명의 사람들이 메트를 찾는다고 한다.
이 책은 그 유명한 미술관에서 경비원으로 일하기로 결심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는 병으로 사랑하는 형을 잃고 나서 꾸역꾸역 애를 쓰고, 밀치고, 매달려야 하는 일들에 신물이 났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아무 할 일도 없는데 하루 종일 걸려서 해야 하는 일'이다.
스포츠 경기 장면을 등지고 서야 하는 안전요원, VIP를 해코지하는 불청객들을 항상 신경 써야 하는 경호원과는 달리 미술관의 경비원은 방문객과 예술작품을 함께 관람하는 혜택을 누린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다녔던 과거를 떠올려 보라. 하루 8시간가량 같은 작품들을 응시하는 것은 일반 관람객이 자발적으로 누리기 힘든 호사다. 바쁘게 유명작품만 찾아다니며 눈도장을 찍는 게 감상 태도의 국룰이기 때문이다.
예술이 힘을 발휘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상적으로는 처음 마주한 1분 동안은 아무 생각도 해선 안 된다. 특징을 찾는 데만 정신을 팔면 작품의 나머지 대부분을 무시하기 십상이다. -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저자는 선망받는 직장에서 성공을 위해 정신없이 살다가 예술을 경험하기 위해 사고하는 두뇌를 잠시 멈췄다. 예술 작품은 바로 그것을 허락했다, 멈춰 서서 빠져들 여유를. 미술관에서의 10년이란 시간은 그에게 다시 앞으로 나아갈 에너지가 되었다.
삶은 나아가기와 멈춤의 연속이다. 너무 빨리 나아가려는 자에겐 '번아웃'이란 주의를, 계속 멈춰있으려는 자에겐 '권태로움'으로 경고를 한다. 삶은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계속 살아가도록 독려한다. 하지만 때론 살다가 멈춰 서야 할 때가 있다. 그때 우리에겐 예술이 필요하다. 꼭 모두가 10년 간 멈춰 설 이유는 없다. 시집 속 짧은 시 하나, 도감 속 작품 한 점, 유튜브 속 노래 한 곡에도 우리를 위한 위로는 숨어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