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힐빌리의 노래'를 읽고
'힐빌리의 노래'는 흔하디 흔한 흙수저의 성공담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가난뱅이 수능만점자, 꼴찌에서 서울대 간 이야기 등으로 자주 출간되곤 했다. 이런 책들이 팔리는 이유가 예전에는 비슷한 혹은 더 못한 처지에서 성공한 스토리가 주는 동기부여였다면, 요즘은 일종의 판타지 소설로 기능한다. 아마도 성공으로 가는 사다리가 부러진 탓일 거다.
부통령 후보가 된 힐빌리.
이건 러스트벨트 지역에 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하층민에게는 천지가 개벽할 일이다. 운이 좋으면 수급자 신세를 면하는 정도고 운이 나쁘면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사망하는 것을 당연스레 여겼던 사람들에게 '힐빌리의 노래'는 복음과도 같다.
레드넥, 화이트 트래시로 폄하되는 이들이 처음부터 밑바닥을 전전했던 건 아니다.
미국 주류 와스프와는 달리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의 핏줄인 탓에 상류층에서 활동할 기회는 적었지만 미국 제조업이 튼튼하던 시절엔 주로 기계공이나 육체노동자로 일하며 중산층의 한 축을 담당했다.
지금은 트럼프의 열렬한 지지자들이지만, 한때는 '노동자들을 위한 정당' 민주당의 견고한 지지층이었다. 그들이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지지하는 당을 바꾸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그건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려 한 민주당의 지원 정책이 힐빌리들의 '콧털'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힐빌리들의 모토는 '우리 가족은 내가 땀 흘려 일한 돈으로 살아간다'이다. 그런데 복지 제도에 기대 놀고먹는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는 힐빌리들을 매일 일터에 나간다는 이유로 조롱하자, 말 그대로 빡치게 된 것이다(실업급여 등 지원금과 힐빌리들의 임금이 얼마 차이가 나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시간이 흘러 제조업 강국 미국의 당당한 주역이 일자리를 잃고 하층민으로 전락했다. 세계화 추진으로 제조업의 기반을 일본, 한국, 대만,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에 내어준 탓이다. 그 덕에 잘살게 된 건 월가로 대표되는 금융자본가들과 글로벌 빅테크에 다니는 IT전문가 집단이고, 복지 혜택을 누리는 건 흑인, 무슬림, 아시안, 라틴아메리칸들이 되었다.
이게 힐빌리들의 박탈감의 원천이다.
MAGA라는 구호에서 말하는 '위대한 미국'은 그들이 주축으로 활약했던 제조업 강국 시절이다. 트럼프는 정확히 그 지점을 건드렸고 그래서 그들이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것이다. 어쩌면 4년 후, '힐빌리의 노래'의 저자 J.D. 밴스의 대통령 당선은 힐빌리들이 꿈꾸는 새로운 '아메리칸드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