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과 소리
단어나 문장을 보면 떠오르는 심상과 소리가 있다. 요사이 영화로 상영했던 슬램덩크는 내가 가장 좋아했던 만화였는데 친구들과 다르게 내가 좋아했던 캐릭터는 송태섭이었다. 다들 가장 멋진 사람을 좋아했던 것 같은데 나는 가장 나와 비슷한 사람을 좋아했다. 여튼 송태섭이 간간히 좋아하는 주무(농구경기에서 보조 업무를 하는 사람)에게 "한나씨"하는 장면들이 있다. 이때 내가 생각하는 송태섭의 목소리가 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소설이라면 각각의 심상과 소리, 만화라면 각각의 소리가 있을 것이다. 만화 영화를 보니 영 내가 생각했던 "한나씨" 목소리가 아니었다.
투기
던져진 삶이라는 말을 들으면 떠오르는 심상은 유영하는 우주인이다. 방향이 명확하지 않은 텅비고 적막한 우주에서 조금만 실수해도 빙글빙글 도는 심상이 나에게는 '던져진 삶'이다.
하루
병에 걸려 보니 '던져진 삶'의 심상이 달라진다. '던져진 삶'은 포수의 미트를 향해 가는 야구공 같은 것이다. 모든 이들의 피처 마운드와 포수의 홈플레이트 사이가 다를 뿐이지 태어나면서 던져진 삶은 결국 포수가 공을 잡으면 끝나게 되어 있다.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못했던 투수와 포수의 거리를 생각해보게 된다. 그것이 1년의 거리일까? 2년의 거리일까? 예전처럼 '끝이 있는 것은 알지만 그 끝이 아직 멀어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오늘 하루를 삶으로서 나는 하루 만큼 포수의 미트에 가까워져 있다. 하루를 소중하게 산다는 것이 어떻게 산다는 것인지 고민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