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리역에서 안반데기까지
두번째 날은 3코스와 4코스로 구절리역에서 안반데기까지다. 거리로는 약 27km다. 하루종일 걸어야 하겠기에 일찍 민박집에서 나왔다.
3코스 : 구절리역에서 배나드리마을까지(12.9km)
반나절에 3코스를 완성해야 하므로 바쁜 걸음을 옮겼다. 노추산 정상까지는 매우 힘든 길이었다. 오르막이 험하여 경치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너른 돌무더기 바위 지대가 나타났다. 그제서야 이제 정상 부근까지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이 급해 바삐 걸었는지 시간이 그리 지체되지 않았다.
노추산 정상은 별 볼것이 없었다. 다음에 다시 온다면 굳이 고생해서 정상까지 오를 필요는 없겠다 싶었다. 오히려 정상 근처의 능선에서 바라본 다른 산들의 풍경이 좋았다. 구름과 산과 하늘이 조화를 이루었다. 오르막길만 힘든 것은 아니었다. 내리막길은 오르막길보다 더 힘들었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찬란한 젊음의 시절 오르막길은 힘들기는 해도 얼굴이 아름답고 근육이 아름답고 땀이 아름다운 시절이다. 같이 올라가는 동료와의 즐거움이 있고 정상이라는 목표가 있다. 내리막길은 그렇지 않다. 내리막길은 길고 힘들고 쓸쓸하다. 내리막길의 끝에 안식처가 있는이라면 모를까 그것이 없는 이에게 내리막길은 괴롭기만 한 길이다. 인생의 내리막길의 끝이 죽음일 때 더욱 그러하다.
낙엽이 쌓이고 보이지 않는 길들이 많았다. 이럴 때는 길을 조금 멀리 떨어져 보아야 한다. 그럼 희미하게 길들의 흔적이 보인다. 그 길을 따라간다. 이정표는 가끔 틀리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방향이 다른 경우가 있다. 노추산에서 1km를 벗어났다 되돌아 온적도 있다. 스마트폰 지도가 아니었다면 필경 큰 절망에 빠졌을 것이다. 길은 멀리보고 과학적 합리성은 어느정도 신뢰할만하다.
뒤늦게 나무에 있는 리본들을 발견했다. 갈림길에는 누군가 묶어 놓은 리본이 있다. 그 리본만 따라가면 된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길도 삶도 선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면 되는 것인가보다.
점심을 배나드리마을에서 먹을 요량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니 모정탑이라는 가족의 불운을 막기 위해 한 할머니가 몇십년을 쌓았다는 탑에 이른다. 수백개의 탑을 보고 광기 같은 것이 느껴졌는데 가족을 위해 몇십년을 쌓았다는 글을 읽고는 할머니의 애정이 느껴졌다. 할머니는 이 탑덕에 가족의 삶이 좋아졌다고 믿었는데 내가 보기에 불운과 행운은 긴 삶속에서 주사위처럼 던져지는 것이다.
배나드리마을에서의 점심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도착해보니 마을이라기에는 가구수가 너무 적고 하나있는 식당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점심을 해결할 방법이 없어 잠시 주저 앉아 망설였다. 묘수가 없었다. 빨리 일어나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안반데기로 빨리 가 식사를 해결하는 방법이 제일 나을 것 같아 무거운 몸을 일으켜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4코스 : 배나드리에서 안반데기까지(14km)
배나드리 마을에서 안반데기 가는 방향의 초입은 괜한 고생이었다. 도로를 피해 동네 산을 가로지르는 것인데 힘만 들었다. 길을 걷다보니 임도가 좋고 산길은 매력이 적다. 임도는 길이 넓고 탁트인 주변을 볼 수 있는 반면 산길을 산주변이 막혀 있고 같은 풍경이 계속되니 재미가 없다.
잠수교를 따라 안반데기 삼거리까지 길은 이번 트래킹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었다. 강을 까다 너른 길을 걷는데 왼쪽은 강이 바짝 붙어있고 오른쪽은 산이 바짝 붙어 있어 가을 속에 푹 잠겨 근심 걱정을 잊게 만들었다. 도암댐으로 올라가는 오르막이 힘들었지만 도암댐과 그 주변 산의 경치도 매우 아름다웠다.
문제는 저녁 식사였다. 팬션에 전화를 하니 식당 하나가 있긴 한데 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저녁 식사를 할 방법이 없는지 물어보니 한 1km를 내려가면 식당 하나가 있다고 했다. 식당 번호를 인터넷에 찾아 저화를 하니 다행히 받는다. 식사를 제공하느냐 했더니 제공한다고 해서 혹 1인도 가능하냐 했더니 난색을 표하며 일단 와보라 했다.
바삐 걸어 식당에 4시경 도착을 했다. 주인에게 아까 전화 했던 이라 말하자 1인은 어렵고 2인용에 해당하는 오리고기를 권했다. 가격을 물어보니 6만원이란다. 괜히 왔다고 후회가 되었지만 진퇴양난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하루를 굶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른 것은 없느냐 했더니 메기탕이 4만원이라 해서 그것을 시켰다. 주문을 하고서는 잠깐 화가 났다. '왜 일단 오라고 한 것이지?'
그래도 식사가 나오니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맛있게 먹었다. 시장이 반찬이어서 그런지 모든 음식이 맛있었다. 의외로 인심은 좋아서 배고프다고 이것 저것 가져다주었다. 오늘 담구었다는 김치 겉저리가 특히 맛있었다. 음식을 다 먹기에는 힘들어 다음 날 아침에 먹을 요량으로 포장을 요청해서 가게를 나섰다.
해가 슬슬 지기 시작하는데 걸어서 가면 1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거기다고 꼬불꼬불 오르막길을 가야해서 심신이 무너질듯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걱정하며 딱 50걸음을 걸었는데 승용차 한대가 내 앞에 서더니 안반데기가 어디냐고 물어보았다. 사실 나도 처음 가보는 곳이지만 지도상 길은 하나 밖에 없는 것을 확인했기에 너스레를 떨며 길을 알려주겠다고 허락을 맡고 탑승을 했다. 차를 타고 올라가며 이 차를 타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가파른 길을 보며 새삼 꺠달았다.
이렇게 숙소에 도착을 했다. 이른 출발과 늦은 도착으로 힘든 하루였지만 인상 깊고 아름다운 길을 걷게 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