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h Wonder, 2015
앨범을 남에게 추천할 때는 항상 고민이 된다. 좋은 앨범 중에서 뒤적거려도 너무 대중적인 건 이 사람이 무조건 알 거 같고, 또 너무 매니악한 걸 알려주기엔 맨날 그런 음악만 듣는 사람으로 보일 위험성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아티스트지만 가사도 좋고 전체적인 분위기도 있으면서 호불호 크게 갈릴 요소도 없는, 결과적으로 내가 음악 좀 듣는 사람임을 보여줄 수 있는 앨범은. 그 정말 흔치 않다. 음식으로 따지면 소개팅 자리에서 실패하지 않고 깔끔하게 먹을 수 있는 맛집 느낌인데, 이게 참 어렵지 않은가. 그래도 돌이켜봤을 때 내 경험에서 그런 위치에 있어준 앨범이 바로 요 앨범이다.
고등학교 때 이 앨범을 처음 접했는데 그때도 공부할 때 음악을 듣는 나쁜 버릇이 있었기에 매일 7시면 자습실에 올라가면서 오늘은 무슨 노래를 들을까 고민을 했다. 막상 또 5분마다 핸드폰 켜서 노래를 바꿔가면서 듣기엔 양심이 조금 찔리니 그냥 무작위로 틀어놓아도 마음이 편안한 앨범을 찾아다녔다. 너무 시끄럽거나 졸리거나 흥 터지는 음악이 없어야 하고, 좀 잔잔하게 듣기 좋은 노래들을 찾아다니던 때에 영국 신인 아티스트로 오원더를 알게 되었다.
Livewire가 타이틀곡이라 들어봤는데 도입부에 신스랑 피아노 선율 딱 듣고 이거다 싶었다. 피아노를 놓지 않고 계속 쳐온 사람으로서 좋은 피아노 선율이 있으면 자동적으로 몸이 반응하는 그런 게 있는데, 딱 고런 포인트였다. 난 멜로디가 아무리 좋아도 가사가 너무 유치하면 마음이 확 식는 가사 중심파인데, 가사도 너무 담백몽글하고 좋아서 맘에 쏙 들었다.
앨범으로 들었을 때도 덜컥하면서 앗 이건 좀 별론데 하는 곡이 없었다. 다 좋은데 딱 한 포인트가 별로이면 정말 가슴 아프게도 5.0을 못 주는 그런 경우가 다들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난 섹후땡 1집에 Apocalypse 후렴 가사가 너무우 유치하게 느껴진 이후로 잘 손이 안 가는데, 그렇게 덜컥하는 지점이 없다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여행하다가 인적 없는 동네 아무거나 들어간 카페가 차분하고 인테리어도 좋은데 맛도 나쁘지 않은 그런 느낌. 정말 좋은 곡 한 곡이 있고 나머지가 별로인 앨범보다 이렇게 흠을 잡기 어려운 앨범을 더 찾기 어려웠던 것 같다. (어쩌면 흠이 있었는데 너무 정이 들어버려서 다 좋게 들리는 것일 수도 있음)
그 이후로도 가끔 생각날 때 즐겨 듣는 몽글 갬성 앨범이 되었다. 들으면 고등학교 생각도 많이 나고 그 땐 이 정도까지 좋은 줄 모르고 들었는데 싶다. 친한 사람들한테는 주머니 스윽 추천도 많이 했고, 벌써 들은 지 8년이 되어가는 앨범이다. 재밌는 게 요 그룹이 혼성 듀오다.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남사친 여사친 관계였는데 어느 날 근황을 찾아보니 둘이 결혼을 한 것이다(!) 데뷔 인터뷰 때는 그냥 친구다, 소울메이트다 이러던 사람들이... 흠흠
다 씻고 자기 전에 창문 열고 들으면 딱 좋고, 공부할 때나 할 거 할 때 배경 음악으로 들어도 좋은 앨범이다. 곡 수가 많아서 다 집중해서 듣기엔 부담스럽고, 오히려 노래 느낌이 미니멀하게 비슷비슷해서 우선 편하게 막 틀어놨다가 근데 방금 곡은 좋았는걸 하면서 그다음에 찾아 듣기 좋다.
추천곡은 -
Livewire : 내 인생곡 10곡 뽑으라면 들어가지 않을까? 사실 앨범 외적으로 곡만 봐도 너무 좋아하는 곡이고 오원더 감성 압축본이라고 생각한다. 요걸로 고등학교 몽글 감성을 채우지 않았나 싶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라이브 하는 영상 있는데 진짜 낭만 최대치다.
곡이 좋았다면 이거랑 BBC 라디오 라이브 보세요 최고임
Landslide : 그냥저냥 위로하는 가사가 아니라 난 너가 잘할 거 알아 하는 느낌이어서 더 좋게 들었던 기억이 있다. 몰랐는데 찾아보다가 5년 전에 릴 우지 버트가 이 곡 샘플링해서 The Way Life Goes로 노래 낸 거 발견했다. 왠지 모를 뿌듯함.
The Rain : 진짜 비 올 때 들으면 너무 좋다... 오원더 1집엔 가사 반복이 정말 많은데 그게 가장 와닿은 곡이이다. 가끔 뒤에 깔리는 피아노도 좋고 드럼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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