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의 일이다.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백수인 내가 마트에 장을 보러 간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콩나물, 두부 따위의 식재료를 카트에 담고서 목적 없이 마트 내부를 빙 돌았다. 계산하러 가려던 중 출입구 가까이에 판매하고 있던 핫도그가 눈에 들어왔다. 크게 고민하지 않고 하나를 주문해 카트에 담았다. 그리고 결제는 장 본다고 받았던 어머니의 카드로 했다. 작은 기대는 금방 무너져 내렸다. 장바구니에서 나온 핫도그를 식탁에 올리자 어머니가 나를 크게 꾸짖었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핫도그가 문제였다. 내가 먹고 싶은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어머니가 먹고 싶다고 한 것도 아닌, 순전히 어머니가 핫도그를 좋아하시니 이것도 좋아할 것이라는 나의 생각에서 비롯된 소비였다. 핫도그는 찬밥신세가 되었고, 차게 식은 핫도그는 내 입으로 들어갔다. 눈물 젖은 핫도그였다.
핫도그를 환영받지 못하게 만든 건 내 잘못이 크다. 집안 경제 사정이 팍팍한 상황에서 필요치 않은 소비를 한 것, 그 소비를 어머니의 카드로 해버린 것이 화근이다. 어머니께 사드리고 싶었다면 내 카드로 긁었어야 하는데 내가 돈이 없으니 그냥 어머니의 카드를 사용했다. 나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 이 상태로 조금 더 있어도 괜찮을 거라는 착각. 내 나이에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치열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말이다. 언제까지고 가능성 있는 상태로 머물고 만 있다가 고여 버린 것이다. 그래서 현실감각이 둔해져 있었나 보다. 다시 현실로 발을 내디뎠다.
생각해 봤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 중에는 돈을 벌고 모으다 보면 이룰 수 있는 것들이 꽤 많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얼른 일을 하고 싶어졌다. 자소서를 쓰고 면접을 봤다. 단기 아르바이트를 며칠 하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 회사에 입사한 지 1년이 다되어간다. 내 돈으로 핫도그를 사먹는 일은 없었다. 오늘은 부모님과 점심으로 소바를 먹으며 대게 튀김을 시켜 먹었다. 핫도그보다 훨씬 맛있다.
가끔 과소비를 한다 싶을 때면 마트 핫도그가 생각 난다. 식욕을 떨어트리고 소비를 막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요즘에는 좀처럼 잘 막아내지 못한다. 추가수당이 들어오니까, 상여금이 들어오니까 하는 핑계로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질러버리기 일수다. 벽에다가 핫도그를 써붙여 놔야 할 판이다.
집에만 있어도 불안은 있고, 집 밖을 나가 일을 해도 불안은 있다. 그러면 돈을 벌며 불안한 게 낫다.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으니까. 어른답게 사는 건 어려운 일이다. 늘 어렵다. <나를 채우는 일상 철학>이라는 책에서도 말한다. “어른다운 삶을 근근이라도 살아가려는 노력에 따르는 어려움을 그는 잘 알고 있다.”라고. 어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 대단하다고. 어른이 멋있는 건, 계속 자기자신과 싸우며 노력하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