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것과 생각하는 것을 외면하고 지냈다. 양심의 체중이 불까 봐 근근이 읽기만 했다. 머릿속을 떠다니는 몽글한 꿈들이 새삼 거창하게 다가왔다. 자신이 없어졌다. 눈 뜨면 출근하고 때 되면 돈 나오는 노동 집약체로 그냥 살까. 소속과 급여가 주는 존재의 당위성에 그만 기대고 싶어진다. 하루 2번 밥을 하고 청소, 빨래, 육아의 3종 임무에 충직하며 뭐라도 끄적여 보겠다며 쪼개 쓰는 시간이 버겁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서.
이른 아침 지옥행인지 지옥철인지에 몸을 싣고 아이 둘 키우는데 어른 여섯 붙어 살던 적이 아득하게 느껴질 즈음 회사 인사 담당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퇴사는 99.9%야.” 단단히 못 박았는데 고작 0.1%의 미물 같은 기운이 고개를 빼꼼히 쳐든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다 잊었어? 모두 어렵게 결정하고선 도대체 뭐 때문에 고민하는지 모르겠네. 내려놓지 못하는 건 욕심이야.”
복직 여부를 놓고 또다시 맴도는 내게 남편은 냉정한 일침을 건넨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알고 있다. 어째서 도돌이표가 되기를 자처하는 건지 가장 답답한 사람은 나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하고 싶은 일 찾는 법」
언젠가 읽다 만 야기 짐페이의 책을 펼쳐 들었다. 무엇이라도 붙들어야 할 심정이었다. 6시 언저리에 눈을 떠 아침 산책만 근근이 해오던 참이었다. 그나마도 걷는 내내 연예인들 먹고사는 류의 유튜브를 틀었고 숙제 안 한 마음처럼 불안한 감정도 늘 함께 재생되었다. 남편은 쉬는 것도 필요하다며 휴식을 권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나를 탐구하고 앞으로를 궁리하며 미술관에 가고 까페에 가서 노트북을 펼치는 대신, 사람들을 만나고 맛있는 빵을 사러 줄을 서고 필라테스 레슨을 늘리고 약간의 쇼핑을 했다. 하루 지분의 최대 주주인 가사와 육아만으로 이미 휴식이란 말은 별반 와닿지 않았지만, 내 나름의 세속적인 삶을 살아 보았다. 올해 딱 두 번의 낮잠을 잤는데 자칭 나태한 주간에 이틀을 연속해서 벌렁 누워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살면 좋을지 모르겠어서 일종의 반항을 스스로에게 한 것 같다.
인생을 더 이상 낭비할 수 없다는 몇 달의 결연함 따위는 어디로 흩어지고, 그저 돈만 벌어다 주던 속세의 자리가 다시금 나를 유혹하는 것일까. 내가 진정으로 쫓으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꿈을 향해 반짝이던 마음들은 나의 그릇으로는 담을 수 없는 그저 배부른 허황이었을까. 결국 이제 와 닿을 수 없는 것들만 못내 만지작거리다 이대로 돌아서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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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딸의 체육대회에 갔던 날 모처럼 생기가 넘쳤다. 미천한 운동 신경이지만 종목마다 패기 있게 출전하는 엄마! 비록 이어달리기 주자로 나서서 시원하게 미끄러지며 역전패와 부끄러움의 몫을 챙겨야 했지만, 선생님들 만장일치로 MVP로 선정되는 영광을 함께 데려왔다. 부상으로 받은 자전거는 우리 딸의 자랑스러운 애장품이 되었다. 생애 첫 Most Variable Player. 나는 진심으로 가슴이 뛰었다. 주책맞게 백여 명 관중 앞에 넘어지고 잔디에 쓸려 무릎이 다 까져도 그 판의 플레이로 나는 설레었다. 무려 유치원 운동회에서.
“뭐라도 되고 싶어서 미치겠어.” 어느 날의 주체할 수 없는 마음 같은 것. 나는 역동하는 삶이 좋다. 결국 그것을 택할 것 같다. 내가 만든 인생 판에 Player로 나서는 꿈. 나는 달리고 싶다. 욕심이 많아서 하나만 진득하게 붙드는 희생도 싫고 지지부진한 체력에 가진 노력도 최대값을 내지 못하는 주제에, 결국 오늘도 포기 대신 리셋을 택한다. 오랜만에 새벽 5시에 잠을 깨었다. 야기 짐페이의 잘하는 것(재능)을 찾는 30가지 질문에 솔직한 답을 하려고 책더미 밑에 깔린 노트북을 꺼냈다. 꺼낸 김에 글도 몇 줄 적는다. 그만 물러서고 싶은 나약함과 물러서고 싶지 않은 열망 사이. 일상에 이미 존재할지 모를 '환희'와 같은 것을 캐내고자.
우리 안에 있는 잠재력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을 정하고 몰입함으로써 드러납니다. 자신답다고 느낄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 바로 성공입니다. 얼른 자기이해를 통해 하고 싶은 일 찾기를 끝내십시오. -야기 짐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