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잘못’됐다. 단단히 쎄한 느낌. 그것을 알아차린 순간 투항을 표하고 체념을 택했다. 불과 스무 살 무렵, 어쩌면 그보다 오래전. 그 시절 인생은 내게 싸워서 쟁취하고픈 대상이 아니었다. 그냥 어찌 잘 사는 것. 무력한 마음은 열정을 둘 곳이 없었다. 학교생활, 전공 공부, 동아리 활동, 취미나 친구 관계. 어디에도 나의 20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른 길을 갔어야 하는데 어차피 늦었네. 꿈 타령조차 할 줄 몰라서 휩쓸리는 대로 살았다.
어려서 줄곧 가정은 화목했고 경제적으로 달리 부족함이 없었다. 아빠의 사업이 위기를 겪을 적 부모님은 묵묵히 견디셨고 나와 동생은 극성스럽게 돈 들이지 않으며 착실한 성적을 냈다. 건강 상태와 친구 사이도 항상 좋은 편이었다. 대체 어느 틈에 흐름을 벗어난 걸까.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스무 살의 문을 열자 작정하고 계획한 듯 커다란 알 속에 스스로 가두어 버린 나를. 급격하고도 치밀하게 움츠러들기로 자청한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퍼즐 판을 엎어 과거의 조각을 새로 맞추는 방법뿐. 후회의 감정을 인정하고 뒤늦게 들여다보는 일이란 몹시 아프다.
그때의 나를 만나고 싶었다. 하고 싶은 게 없었고 사람들로부터 도망쳤다. 경험은 그저 두렵고 귀찮은 것. 관계에의 욕구와 내면의 신념을 둘 다 잃고 동굴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때의 나를 연민으로 불러내 본다. 다시 살고 싶다. 지나온 시절의 정서를 떠올리면 낮게 깔린 회색 기억 같아서. 그 힘든 시간을 두 번 건널 자신이 없어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런 줄 알았다. 지금껏 쌓아온 현재의 삶이 가장 행복하다고 애써 말했다. 처음으로 묻고 싶다. 생의 싱그러운 시절을 왜 그렇게 보내야 했냐고. 정말 가슴에 꿈을 두지 못 했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