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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대리 Mar 24. 2024

서른, 나의 동굴이 필요합니다

지금의 남자친구와 연애를 시작하면서 썸을 탈 때, 나는 늘 말하는 것이 있었다.

연인 사이라도 ‘내 시간‘ 이 필요하다는 것을 존중해주었으면 한다는 이야기였고, 그 이야기에 남자친구도 동의를 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연인이 되었다.


20대에는 내 공간과 시간에 대한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연애를 하면서도 일을 하면서도 내 공간과 시간은 늘 뒷전이었다. 그렇게 나는 나에게 내 시간이 주어지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어려웠다. 제대로 노는 법도 제대로 시간을 즐기는 법도 배우지 못했다. 그래도 젊음이라는 무기 덕분에 나는 모임에 초대를 받고, 사람들을 자주 만났고, 늘 그런 자리에 중심에서 있었다. 나는 그런 시간이 계속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가 나의 황금기라 생각했다. 그건, 모두 착각이었다.


30대가 되니 마치 인생에서 모든 재앙들이 나에게만 집중되는 것 같았다. 31살 그렇게 나는 나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나를 품어주었던 회사를 뛰쳐나왔고, 무작정 제주도로 날아가서 한 달 정도 머무르고 3개월치 월급을 다 쓰고 나서야 돌아와 집도 이사를 했고, 직장도 옮겼다. 하지만 변화에 만족하진 못했다. 새로운 연애도 시작했지만 그것은 안정적이지 못했다. 왜 내 주변을 모두 바꾸었는데 나는 날이 가면 갈수록 더 예민해지고 불안정해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당시 연인이었던 상대에게 나는 ‘내 시간이 좀 필요해’ 라며 양해를 구했다. 그래봤자 상대와 나의 집은 불과 30분 거리였고, 상대는 취업을 준비하는 수험생 나는 직장인. 내 시간을 한 주에 하루 정도만이라도 달라는 요청이었다. 둘이서 같이 연애를 하는데 어떻게 상대를 그렇게 외롭게 놔둘 수 있느냐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나는 연애를 지속하는 내내 상대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점점 내 연료가 바닥이 날쯤에서야 나는 요청을 했다. 하지만 이내 서운하다는 말로 나의 요청은 거절되었다. 그리고 잠잠히 묵묵히 지속되던 연애는 결국 켜켜묵은 감정들을 토해낸 채로 끝났다.

그다음부터 나는 온종일 집에서 나의 ‘일’만 했다.


글을 쓰거나 넋을 놓고 하루종일 창 밖을 바라보거나 그동안 내가 놓쳤던 지점들을 다시 회고하거나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어떤 생각으로 살아갈 것인지. 생각하고 쉬었고, 생각하고 울었고, 생각하며 한숨을 토해내었다. 이제는 핸드폰에 연락하며 안부를 묻는 사람들도 점점 줄어갔다. 나와 10년을 넘게 알고 지내 온 친구들도 주거지가 멀어지고 각자의 가치관과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지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연락이 뜸해졌다. 새롭게 친해진 사람들도 어쩌다가 안부를 물을 뿐 절친한 사이처럼 가깝게 지내지는 못했다. 그렇게 철저한 혼자가 되어갔다. 혼자가 되었는데 이상하리 만큼 마음은 편했다.


집 안에 혼자 있는 것이 오히려 즐겁고 편했고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내 작은 동굴로 들어갔고, 서른이 넘어서야 동굴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동굴 안에서 만큼은 내가 어떤 존재이든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고 감정을 토해내고 조금 지질해질 수 있는 그리고 지나간 기억들을 곱씹으며 유치하게도 처절하게도 나를 위한 모든 기억과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들었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 공간에서 내가 온전히 홀로 설 수 있어야 세상에 나가서도 단단해질 수 있다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영화 <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캐리‘는 ’ 미스터빅’과 진정한 결혼을 한 후에도 자신의 오래된 아파트를 팔지 않고 계속 놔둔다. 그리고 그곳은 쉬고 싶은 사람들이 묵을 수 있도록 그리고 자신도 글을 쓰기 위해서 종종 찾는 공간으로 사용한다. 예전 연애 프로에서는 남자와 여자에 대한 이해를 끊임없이 해석해 주기 위한 프로들이 많았다. 그중에서 아직도 생각나는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 여자는 해결하고 싶어 하지만 남자는 동굴로 들어가고 싶어 한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나는 이것이 이제는 성별과 사람의 차이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굴 하나쯤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리틀포레스트>가 한국판으로 나왔을 때, 흥행 보다도 SNS에 도배된 것이 바로 나만의 숲, 나만의 공간, 나만의 리틀 포레스트를 가지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만큼 모두 자신만의 동굴이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하면서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내 동굴 안에서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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