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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청아 Nov 06. 2022

안녕히, 안녕

군 생활을 하다 보면 한 번쯤, 선임과 단 둘이 시간을 때워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 시간을 오로지 나의 스피커로 채우라고 했다면 금세 소재가 고갈되어 무리가 됐을 테지만, 다행히도 내 선임은 본인이 스피커의 역할을 자처했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영혼이 있을까 없을까?

인간은 어디까지 인간일까?

인간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그 당시에는 정확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애초에 그런 건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그냥 어물쩍 대답하고 넘겼다.


하지만 사유를 좋아하던 선임은 짓궂게도 내 대답에 꼬리를 물고 질문을 했다. 나는 완전히 반박당한 채 두 손을 들고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다.


작별인사  [ 밤하늘 스페셜 에디션 ] 김영하 저 | 복복서가 | 2022년 09월 05일


『작별인사』는 그리 멀지 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별안간 삶이 송두리째 뒤흔들린 한 소년의 여정을 좇는다. 유명한 IT 기업의 연구원인 아버지와 쾌적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던 철이는 어느 날 갑자기 수용소로 끌려가 난생처음 날것의 감정으로 가득한 혼돈의 세계에 맞닥뜨리게 되면서 정신적, 신체적 위기에 직면한다. 동시에 자신처럼 사회에서 배제된 자들을 만나 처음으로 생생한 소속감을 느끼고 따뜻한 우정도 싹 틔운다. 철이는 그들과 함께 수용소를 탈출하여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떠나지만 그 여정에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 작별인사 yes24 소개글

소개글에서도 보다시피 작별인사는 철이라는 소년의 성장기이자, 작가가 철이 그리고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

크게 세 파트로 나누어진다고 생각한다.

1. 철이와 선이의 대화

2. 선이와 달마의 대화

3. 철이의 두 번째 죽음


하나씩 차례로 알아보자.


1. 철이와 선이의 대화

인간과 똑같은 감정을 가진 휴머노이드인 철이, 그리고 복제인간인 선이의 대화는 인간의 정의와 기준에 대해 묻는다. 이는 선임이 내게 한 질문과 같다.

팔 하나를 잃어 팔을 기계로 교체하더라도 인간인가?

맞다면 뇌를 제외한 모든 부위를 기계로 교체해도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

뇌마저 기억을 보존한 칩으로 교체해버린다면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대답하지 못했던 질문이다.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서야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태어나길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났다면 인간이다. 쉽게 말해, 태어난 게 아니라 만들어졌다면 인간이 아니다.


복제해서 만들어졌다면 '복제인간'인 것이고, 인간의 몸에 기계를 이식했다면 '사이보그', 인간과 비슷한 로봇이라면 '휴머노이드'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명칭'과 '구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성'이다. 대상이 어떤 범주에 속하든 인간성을 갖추고 있다면 똑같이 존중해야 한다.


우리가 흑인, 백인, 황인 가릴 것 없이 모두를 존중하듯, '인간성'을 갖추고 있다면 똑같이 존중해야 한다.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보고 "생물학적인 인간이 아니다."라고 할 수는 없다. 그들도 똑같은 인간이다. 하지만 '인간성'이 없다고는 말할 수 있다.


나는 '인간성을 갖춘 로봇'이 '인간성을 갖추지 못한 인간'보다 옳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인간성을 잃는 것이며, 이를 잃지 않도록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2. 선이와 달마의 대화

선이와 달마는 휴머노이드인 민이를 다시 살리는 건에 대하여 옥신각신한다. 이때 선이는 민이를 '되살린다'라고 표현하고, 달마는 '재활성화한다'라고 표현한다.


선이는 민이를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달마는 재활성화를 반대한다. 달마는 삶과 탄생이 고귀하다는 신념을 깬다.


달마는 의식을 가진 존재는 모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태어났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며, 태어나지 않았으면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느끼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해 묻는다.


작가가 던지는 두 번째 질문이다.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

나도 인생의 디폴트 값이 행복이 아닌 불행, 즉 고통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그런 고통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


예전에는 이 질문의 대답에 자신이 있었다.

우리는 소중하니까.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기 위해서.

세상을 조금 더 나은 세상으로 바꾸기 위해서.


하지만 철이 아빠의 말을 듣는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타심으로 아이를 낳는다는 게 가능할까요? 실은 다들 이미 존재하는 누군가를 위해 아이를 낳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내 대답은 이미 태어난 '우리'에 대한 대답이었다. 우리는 왜 태어나야 하는가? 에 대한 질문에는 아직도 답하지 못했다.


우리는 왜 소중할까? 인간성을 갖추고 있어서? 그게 정답이라면 인간성을 갖춘 로봇과 복제인간을 만드는 게 옳다고 주장해야 한다.


3. 철이의 두 번째 죽음

철이는 두 번째 죽음 직전에서 하나의 네트워크로 통합되는 것이 아닌 개별의 죽음을 택한다. 하나의 의식으로 통합되어 자아가 없는 삶이 죽음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마지막으로 죽음의 정의와 의미에 대해 묻는다.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나는 죽음은 인생의 마감일이라고 정의 내렸다. 우리는 모두 작가다. 인생이라는 마감기간 안에 세상에 메시지를 남겨야 한다.


죽음은 인간이 세상에 메시지를 남기게 하는 원동력이다. 마감일이 없다면 작품은 흐지부지 된 채, 언제 완성될지 알 길이 없다. 오늘 하루, 열심히 써야 할 목적도 잃는다.


그렇기에 나는 사람이 죽음으로서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반드시 죽는다는 그 사실 때문에 우리는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아가야 한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내 몸은 죽어 스러지지만 내 이야기는 스러지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남기는 것은 누군가 대신해줄 수 없다. 오직 나만이 나의 이야기를 남길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남길 수 있는 것은 살아 있는 생명체 중 아직 인간뿐이다. 동물과 식물은 본능은 남길 수 있지만, 본능을 거스르는 생각은 남길 수 없다. 혼돈으로만 향하는 우주에 질서를 세우고, 질서를 향해 역행할 수 있는 것은 아직 인간뿐이다.


철이가 죽음을 택하는 장의 제목이 '마지막 인간'인 것을 보면 작가도 같은 생각이다. 만약 철이가 개별의 죽음이 아닌 네트워크로 통합되었어도, 장의 제목은 똑같이 '마지막 인간'이었을 테다. 영생을 택한 순간 더 이상 인간일 수는 없다.




선임의 질문에 대답이 될 수 있으리라 믿었던 책은 도리어 내게 추가적인 질문 공세를 펼쳤다. 답을 한 질문도 있고, 하지 못한 질문도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답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답을 찾아야 한다는 목적이 생겼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내가 첫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책을 집었듯, 다음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나는 또 다른 책을 집어나갈 것이다.


우리는 인간성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아가야 하고,

왜 살아야 하는지? 왜 태어나야 하는지? 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며,

죽음이란 무엇인지, 죽음이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탄생이 있으면 죽음도 있고,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다. 이미 태어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이미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다. 태어났다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건 나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를 위한 길이다.  


언젠가 다가올 죽음에 시간에 이르렀을 때, 세상에 미련 없이 작별인사를 할 수 있도록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세상에 "안녕히 안녕"을 외칠 수 있도록 살아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왜 소중한지, 왜 태어나야 하는지 에 대한 질문에도 대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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